[지지대] 대체복무제

이연섭 논설위원 yslee@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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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살생계(不殺生戒)’는 불교신자가 지켜야 할 계율 중 으뜸이다. ‘살아있는 것을 죽이지 말라’는 뜻이다. 일찍이 출가한 스님들은 군대 생활이 고통이었다. 강제적 육식과 음주, 살생의 기술을 포함하는 군사훈련은 수행의 단절을 넘어 생명과도 같은 계율 파괴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라가 위급할 때마다 일어섰던 한국불교는 계율을 이유로 병역을 거부하진 않았다.

 

종교적 신념이나 양심의 이유로 병역을 거부하는 사람들을 ‘양심적 병역거부자’라고 한다. 양심적 병역거부가 사회 이슈가 된 것은 2001년 불교신자 오태양씨 사건이 처음이다. 오씨는 ‘불살생계’라는 불교적 신념을 이유로 공개적으로 병역거부를 선언하며, 대체복무할 자유를 요구했다. 

2006년엔 불자 김도형씨도 병역을 거부했다. 이들은 병역법 위반혐의로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병역을 거부하면 징역 1년6개월을 선고받는데 ‘여호와의 증인’이 대부분이다. 매년 500여 명이 교도소로 보내지지만 소수종교이다 보니 별난 종교의 매국행위 정도로 매도됐다.

 

헌법재판소가 지난달 28일 대체복무제를 병역의 한 종류로 규정하지 않은 병역법 5조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고, 내년 12월31일까지 대체복무제 입법을 요구했다. 이는 양심적 병역거부를 우회적으로 인정한 것이나 다름없다.

 

대체복무제는 군 입영 기피의 정당한 사유가 있는 사람들이 군과 관련없는 시설에서 군 복무를 대신해 근무하는 것이다. 병역거부자에 대해 대체복무를 허용하는 국가는 그리스, 이탈리아, 네덜란드, 핀란드, 스위스, 대만 등 20여 개국에 달한다. 

이들 국가의 대체복무 기간은 현역의 1.5~2배다. 현역 복무 기간이 9개월인 그리스의 대체복무 기간은 17개월이고, 현역 복무가 165일인 핀란드는 347일을 대체 복무해야 한다. 병역거부 사유에 대한 심사도 까다롭다. 대체복무 근무지는 우체국이나 법원 같은 행정부처, 소방·경찰 등의 치안·안전 관련 분야 등을 망라한다. 특히 사회복지 분야에 배치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도 대체복무제에 대해 심도있게 논의해야 할 시점이다. 현재 현역병 복무기간은 육군 21개월, 해군 23개월, 공군 24개월이다. 대체복무 기간은 당연히 길어야 할 것이며, 심사 또한 까다롭고 철저해야 한다. 대체복무가 인정되면 양심적이지 않은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이 급증할 수 있다. 병역기피 수단으로 악용되지 않게 걸러낼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병역 의무에 있어 중요한 것은 형평성이다. 현역 복무자들이 상실감을 느끼지 않도록 해야 한다. ‘군대 가는 것은 비양심적인가’라는 비아냥이 나오면 안 된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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