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극단적인 혐오

이연섭 논설위원 yslee@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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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 혐오 성향의 인터넷 커뮤니티 ‘워마드’가 성체(聖體) 훼손 논란에 휩싸였다. 며칠 전 워마드 사이트엔 예수의 몸을 상징하는 성체에다 빨간 펜으로 예수를 모독하는 욕설을 쓴 뒤 이를 불태우는 사진이 게재됐다. 

천주교의 낙태죄 폐지 반대 입장과 여성 사제를 두지 않는 남성 중심 교리를 정면으로 조롱한 것이다. 이어 14일엔 버스 안으로 추정되는 장소에서 탑승객들의 목과 허리 등에 흉기를 겨냥하고 촬영한 사진이 올라왔다. 촬영 대상은 모두 남성들이다. 게시물 작성자는 “날이 너무 덥다. 그러다 보니까 짜증나서 한남을 찌르기도 한다”고 적었다.

 

‘워마드(Womad)’는 여성(Woman)과 유목민(nomad)이란 단어가 합성된 것이다. ‘오직 여성 인권만을 위한 커뮤니티’를 표방하는 워마드는 여성우월주의를 주장한다. 워마드는 2016년 독립운동가 안중근과 윤봉길을 비하하는 게시물로, 지난해엔 교통사고로 사망한 배우 김주혁을 조롱하는 글로 논란이 되기도 했다. 

남성 알몸사진 유포 사건, 호주 남자 어린이 성폭행 사건, 홍대 누드모델 사진 유포 사건 등으로도 몇 차례 도마 위에 올랐다. 성체 훼손 외에도 예수상으로 수음 행위를 하거나 이슬람 경전인 코란을 불태우는 등 종교도 예외는 아니었다.

 

논란이 이어지자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온라인상의 차별·비하 표현의 경우 혐오 풍토 조장을 넘어 자칫 현실범죄로 이어질 우려도 크다”며 워마드에 대한 단속을 하기로 했다. 워마드에서 유통되는 차별·비하, 모욕, 반인류·패륜적 정보를 중점 살펴보고 시정 요구 등 조치를 취하겠다는 방침이다.

 

예멘 난민 문제, 양심적 병역 거부 논란, 혜화역 시위…. 요즘 사회 전반에 난민 혐오, 종교 혐오, 성 혐오 등 ‘혐오’가 넘쳐나고 있다. 한때 문학작품이나 신문기사에나 등장하던 ‘혐오(嫌惡)’라는 한자어는 ‘극혐(극도로 혐오한다)’이란 말로 확대돼 혐오가 만연한 사회가 됐다.

 

우리 사회에서 혐오의 역사는 짧지 않다. 광복 이후 1970년대까지는 반공을 둘러싼 이념 갈등에서 주로 나타났지만, 그 이후 에이즈, 환경, 정치, 테러 등으로 확산했다. 지금은 성, 난민, 세대, 무슬림 등 다양한 분야에서 분출되고 있다. 혐오 확산엔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활성화가 한 몫하고 있다.

 

문제는 혐오가 상대적 소수자나 약자를 겨냥한다는 것이다. 또 기존 질서와 충돌하며 새로운 혐오와 차별을 낳는다. 집단으로 표출되는 혐오는 폭력이나 다름없다. 극단적으로 치닫는 혐오 표출이 매우 우려스럽다. 사회병리 현상이 된 극혐에 대한 진단과 처방이 필요하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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