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거물 이해찬의 옷

故 김종필 총재는 기록의 정치인이다. 아홉 번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30대에 국가정보기관-중앙정보부- 수장을 지냈다. 당 의장ㆍ총재ㆍ당 대표 등 당의 책임자를 가장 많이, 그리고 가장 오래 역임했다. 국무총리도 40대와 70대 두 번이나 했다. 정치로 할 수 있는 모든 걸 했다. 그런데 국회의장만은 안 했다. 그 스스로 몸에 맞지 않는 옷이라 여겼다. 국민의 정부 시절, 정치 기자들 사이에 ‘JP 국회의장설’이 돌았다. 그가 단 한 마디로 모른 걸 정리했다. “누가 장난쳤구먼….” ▶경기도지사 후보로 유시민은 어색했다. 3년 앞선 2007년에는 대통령 경선장에 있었다. 2년 앞선 18대 총선에는 대구 수성을에 있었다. 그랬던 유시민이 2010년 경기지사 후보로 나섰다. 인사차 들르겠다고 했다. 작정하고 질문을 준비했다. 들어서는 그에게 물었다. “몸에 맞는 옷이 아닌 거 같은데, 입어보는 척만 하시는 거 아닌가요.” 역시 언어의 마술사였다. 단 1초의 머뭇거림도 없었다. “단추까지 다 채울 겁니다.” ▶‘입어 보는 척’-나름 선문(禪問)이랍시고 던진 질문이었다. ‘단추까지 끼우겠다’-즉석에서 튀어나온 선답(禪答)이었다. 그냥 웃어넘겼다. “하도 말씀을 잘하셔서 나름 준비했던 질문인데, 내가 졌네요.” 그 선거에서 유시민은 선전했다. 재선에 나선 김문수와 박빙의 승부를 폈다. 저력을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역시 몸에 맞는 옷은 아니었다. 공교롭게도 그 후로 방송인, 작가로 살고 있다. “누가 장난쳤구먼”이라며 몸값을 지켰으면 어땠을까. ▶이해찬 의원은 7선 의원이다. 친노ㆍ친문의 좌장으로 통한다. 당 대표도 했다. 김대중 대통령 밑에서 교육부 장관도 했다. 노무현 정부에서는 국무총리까지 했다. 적어도 정치ㆍ행정 이력에 관해서 그와 견줄 여당 의원은 없다. 8월 전당 대회 기사가 온통 그의 기사다. 당 대표 경선판이 그를 중심으로 설명된다. ‘이해찬 의원이 나서면 모두 정리될 것’ ‘이해찬 의원의 경쟁자는 없다’는 논조다. 실제로 그와 각을 세울 ‘배짱 좋은’ 후보가 당에 있을까 싶다. ▶문제는 ‘옷’이다. 당 대표라는 ‘옷’이 그와 맞는가. 민주당 대표는 집권 여당 대표다. 대통령을 받치는 가장 큰 버팀목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그가 총리 할 때 대통령실장이었다. 경력, 선수(選數)에서도 비교가 안 된다. 대통령보다 훨씬 무거운 ‘몸’이다. 경선이라는 것도 그와는 영 어색하다. 격(格)이 다른 후배들과 ‘지지고 볶아야’ 한다. 최고 윗사람인 그만 손해다. 맞는 옷이 아니다. 그런 거 같다. 그에게 준비된 옷은 두 벌이다. ‘추대’라는 옷 한 벌과 ‘불출마’라는 옷 한 벌이다.

김종구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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