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예술의 사회적 역할과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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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에 대한 제도적 지원을 이야기할 때 주변에서 묻는다.

“창작, 연주, 공연, 기획 등 본인들이 좋아서 하는 것을 세금으로 지원을 해야 하지?”라고. 질문을 들을 때마다 문화예술 예산에 대해 마치 부적절한 특혜나 세금낭비쯤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한계를 느낀다.

 

하지만 36년간의 식민지 지배로 전통성과 공동체 문화가 피폐화 되고, 외세에 의한 해방과 민족전쟁, 분단, 오랜 군부정권의 통치와 수출지상주의 정책, 급속한 도시화와 농촌붕괴, 조밀한 시스템 속에서 바쁘게 살아온 우리네 삶의 여정을 보면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사회는 아직 예술의 사회적 가치를 인정하고 ‘예산’으로 반영할 사회적 합의가 준비되지 않은 것이다.

 

2014년에 ‘에라스무스상’을 수상한 벨기에 출신 큐레이터 프리라이젠은 말한다. “예술과 문화와 엔터테인먼트의 역할은 다르다”며 “사회는 세금을 지원하여 시스템적으로 예술가들에게 생각하는 역할을 위임한 것이다”라고.

 

유럽의 문화, 사회, 사회 과학에 공헌을 평가해 매년 수여되는 에라스무스상은 프리라이젠의 말처럼 “현실을 바라보고, 분석, 비판하여 우리를 데려가 줄 수 있는 어떤 다른 비전을 고안하는 역할을 위임” 받은 이들의 사회적 가치를 재조명하는 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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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세의 거장은 “예술은 다름과 차이에서 항상 새로운 생각을 접하고 새로운 정신과 질문으로 기존의 방식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하고 다른 사람의 관점으로 생각하여 시야를 넓혀 준다”며 예술의 사회적 기능과 역할을 강조했다.

이는 사회가 경제적 논리로만 성장하는 것이 아닌, 예술이 인간과 사회를 성숙하게 하는 한 방법이라는 깊은 통찰을 보여주고 있다.

 

가까운 일본의 경우 1999년 노령사회로 진입하며 2004년 심각한 출산율 저하의 정점을 먼저 겪으며 국가재생사업의 핵심사업으로 문화예술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민선 7기가 출발하는 시점인 요즘, 행사와 실적위주의 공약과 정책반영 등 관심을 두고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문화예술의 방향을 단순히 선심성 예산 반영으로 구색을 맞추는 행정은 지양돼야 한다.

 

우리사회의 지속 가능한 행복을 위해서는 생태계의 생물다양성이 필수이듯, 다름을 인정하고 변화에 대한 새로움을 추구해야 한다. 그 변화를 받아들이는 성숙한 토양은 ‘생산적 문화예술창조활동’에서 출발하며, 이는 사회가 예술의 공익적 가치를 공유해 성숙한 동시대 문화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디딤돌이 될 것이다.

 

이득현 (재)수원그린트러스트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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