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마지막 촌철살인

정의당 노회찬 의원이 숨졌다. 자신의 아파트에서 투신했다. 노 의원은 드루킹 측으로부터 금품 수수 의혹을 받아왔다. 드루킹 측근인 도모 변호사가 건넨 5천만원을 받았다는 혐의다. 도 변호사는 노 의원과 경기고등학교 동창이다. 또 드루킹의 인터넷 카페 ‘경제적 공진화 모임’으로부터 강의료 명목으로 2천만원을 받았다는 의혹도 받아왔다. 노 의원은 그동안 “어떤 불법적인 정치자금을 받은 적이 없다”며 의혹을 부인했었다. ▶투신 당시 입고 있던 외투에 유서를 넣어 두었다. “2016년 3월 두 차례에 걸쳐 경공모로부터 모두 4천만원을 받았지만 청탁이나 대가를 약속하지 않았다”고 썼다. “참으로 어리석은 선택이고 부끄러운 판단이었다. 잘못이 크고 책임이 무겁다”고도 했다. 정의당에도 말을 남겼다. “당의 앞길에 큰 누를 끼쳤다. 나는 여기서 멈추지만 당은 앞으로 나아가길 바란다”고 했다. 가족에는 “미안하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진다. ▶애매한 정치적 술사를 쉽고 간단히 푸는 그만의 해석이 있었다. 안철수 전 대표가 “정치 일선 물러날 것. 국민이 소환 안 하면 복귀 못 해”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이를 그는 “국민이 부른다는 이유로 복귀하겠습니다, 언젠가!”라고 번역했다. 홍준표 전 대표의 정치언어도 번역했다. “연말까지 나라가 나가는 방향을 지켜볼 것”이라고 말을 “연말·연초 정도에 복귀하겠다”로 해석했다. 이른바 ‘노회찬 번역기’로 불렸던 해석이다. ▶생전에 그는 이렇게 주장했었다. “드루킹 측으로부터 불법적인 정치자금을 받은 바 없다.” 이 말을 ‘노회찬 번역기’에 넣으면 이렇게 들린다. “드루킹에게 돈을 받기는 했다. 그런데 나는 적법하다고 주장할 것이다.” 불행히도 이 번역도 맞은 듯하다. 유서에 남긴 글에서 ‘4천만원을 받았지만 청탁이나 대가는 없었다’고 고백했다. 칼을 쓰는 자 칼로 망한다고 했다. ‘노회찬 번역기’를 만든 자 ‘노회찬 번역기’로 망한 형국이다. ▶무조건 잘못된 선택이다. 어떤 미사여구도 죽음보다 가치 있을 순 없다. 살아서 증명했어야 했다. 하지만, 그 참혹한 결정이 남겨놓은 의미는 있다. 염치와 책임, 그리고 사과다. 염치없는 정치인, 책임 안 지는 정치인, 사과할 줄 모르는 정치인들이 판치는-지금 이 순간에도- 이승에 던지고 간 마지막 촌철살인이 있다. 그답지 않게 멋도 없고, 기발함도 없지만 전해지는 의미만큼은 그가 했던 어떤 촌철살인보다고 절절하고 크다. “후회한다.” “부끄럽다.” “미안하다.” 새겨들어야 할 정치인이 여럿이다.

 

김종구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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