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시 덕양구 행신동 소만마을 6단지에선 지난달 21일 17개 경비실에 에어컨을 설치했다. 연일 계속되는 살인적인 폭염에 경비원들의 건강이 걱정돼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나선 것이다. 지난 6월 입주자대표회의에서 먼저 경비실 에어컨 설치 의견이 나왔고, 곧바로 찬반을 묻는 주민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전체 1천602세대 중 1천236세대(77.2%)가 찬성했다.
에어컨을 설치하는 데 든 비용은 610만원 정도, 세대당 3천850원 부담이다. 6평형의 소형 벽걸이 에어컨이지만 경비실이 그보다 작아 용량은 충분했다. 경비실이 찜통이라 한낮엔 밖에 나와 나무그늘을 찾아 다녀야했던 경비원들은 “지옥이 천국으로 변했다”며 주민들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반면 수원시 장안구의 5천세대가 넘는 아파트 단지에선 경비실 에어컨 설치를 놓고 입주민과 입주자 대표단이 갈등을 빚으면서 경비실에 에어컨이 없다. 이 아파트 단지는 수원 최대 규모로 58개동에 경비실이 29곳, 64명의 경비원이 근무하고 있다.
지난해 6월 아파트 주민 30명이 “경비실에 에어컨을 설치하자”며 동의서를 작성, 관리사무소에 전달했으나 일부 입주자 대표단이 반대해 입주자대표회의에 상정조차 못했다. 일부 주민들이 자비를 모아 에어컨을 설치하자는 의견을 냈으나 이마저도 전기료가 들어간다는 이유로 거절당했다. 입주자대표회 측은 “아파트 장기발전계획을 수립하고 있는데 그 첫 번째가 무인경비시스템 도입이라 에어컨 설치 뒤 바로 떼야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어 미루는 것”이라고 했다.
40도를 오르내리는 폭염을 선풍기 하나로 버텨야하는 경비원들이 아직도 많다. 이들에겐 올 여름이 지옥이나 다름 없을 것이다. 숨 쉬기도 힘든데 과연 일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싶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지은 전국 임대아파트 중 에어컨이 없는 경비실이 모두 159곳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유한국당 홍철호 의원(김포을)이 LH로부터 받은 자료다. LH는 경비실의 전기 사용료를 부담하기 꺼리는 입주민 반대 때문이라고 밝혔다. 홍 의원은 경비실 전기 요금은 하루 8시간 에어컨을 틀 경우 1대당 월 2만7천600원으로 가구당 월평균 55.4원만 부담하면 된다고 했다.
커피 한잔 값, 또는 그것도 안되는 돈으로 내가 사는 아파트를 관리하느라 밤낮없이 일하는 경비원들을 위해 에어컨 한대 달아주는 게 그렇게 힘들까? 가마솥 더위에 땀 흘리고 있는 지친 경비원들을 보면서 마음이 불편하진 않나? 전국의 모든 아파트 경비실에 에어컨이 설치되는 날은 언제쯤일까?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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