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스트롱맨’ 전성시대의 명암

지금 세계는 ‘스트롱맨’의 전성시대다. 트럼프·김정은·시진핑·푸틴·에르도안·마크롱·두테르테 등 강한 리더가 대세다. 남미에서는 오르데카 니카라과 대통령이 임기 무제한 대통령에 올라 부인을 부통령에 임명하기도 했다. 혼란의 브라질은 국민의 40%가 군부 쿠데타를 원한다는 여론조사도 있었다. 역사의 반동일까, 아니면 시대의 요청일까?

21세기에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신 권위주의가 득세하고 있다. 공통점은 ‘강한 국가’에 대한 국민의 열망, 무역 역조 등 세계화에 대한 반감, 강경한 난민·이민 정책 등이 그것이다. 달라진 미디어 환경이 오히려 스트롱맨을 도와주고 있다. 정보통신 기술의 진보는 필연적으로 독재를 약화시키고 시민혁명을 초래할 줄 알았는데 정반대다.

중국·러시아·이란·터키 등의 사례를 보면 스트롱맨들은 인터넷 여론을 쉽게 통제해 자신의 이미지나 정책을 대중에게 전파, 조작하는데 유용한 도구로 쓴다. 트럼프는 이 분야의 달인이다. 트위터와 자기 입맛에 맞는 매체만으로도 뉴욕타임스나 워싱턴 포스트 등 주류 언론을 소외시키고 있다. 이해하기 어려운 현상이다.

이른바 민주적 지도자가 국가의 안보와 일자리, 대중적 기대를 보장하지 못할 때 이런 스트롱맨이 나타난다. 특히 경제에 주목해야 한다. 유럽경제정책연구센터(CEPR)에 따르면 유권자들이 경제적으로 불안하다고 느낄 때 포퓰리즘 정치인에게 투표할 확률이 14.5%나 높아진다고 밝혔다.

결국 ‘약한 경제’가 ‘강한 지도자’를 부르게 된다. 레이건 대통령과 대처 수상이 집권하기 전 1970년대 미국과 영국의 경제는 파탄지경이었다. 두 지도자는 과도한 복지 등 정부 지출축소, 감세, 규제 완화, 금리 인상, 노동개혁을 내세워 성공했다. 사실 트럼프 경제정책도 레이건하고 똑같다. 유일한 차이는 보호무역을 추가했을 뿐이다. 지금의 스트롱맨들은 레이건이나 대처와는 많이 다른 사람들이다.

스트롱맨들이 이 세상을 망칠 거라는 관측이 많지만 현실은 꼭 그렇지만도 않다. 오히려 스트롱맨들이 기존 질서와 정치 어법을 무너뜨리고 변화를 통해 새로운 시대를 열고 있다는 긍정적 시각도 있다. 스트롱맨 뒤에는 숨겨진 민심이 있다. 집권여당이 지방권력까지 장악한 우리 정치현실도 마찬가지다. 풀뿌리 민심을 읽지 못한 야당의 참패는 예견된 것이었다.

자국우선주의, 강한 국가에 대한 열망으로 스트롱맨들은 패권주의, 무력과시로 이어질 우려도 있다. 이래서 역사는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반복하는 것이라고 강변하는 사람도 있다. 역사는 죄가 없다. 역사가 반복되는 것은 국민이 자꾸 잊기 때문이다.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 고금의 진리가 지금 스트롱맨들에게도 해당할까?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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