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방영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는 성범죄동영상 피해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뒤에도 해당 영상이 사라지기는커녕 ‘유작(遺作)’이라는 이름으로 유통되는 충격적인 실태를 고발했다. 피해자는 전문업체에 돈을 주고 삭제를 의뢰했지만 동영상이 사라지지 않자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영상은 피해자가 숨진 뒤에도 웹하드 사이트에서 100~150원에 거래됐다고 한다.
많은 여성들이 디지털성범죄(일명 몰카성범죄)의 피해자가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떨치지 못한다. 사무실, 지하철, 카페, 화장실, 샤워실 등 공적ㆍ사적 공간 모두 안전지대가 아니다. 이런 불안감에 수만명의 여성들이 서울 도심에 모여 불법촬영을 규탄하는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디지털성범죄 판매금지와 처벌을 강화해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20만명을 넘어섰고, 몰카에 대해 초동수사부터 엄정 대처하고 피해자 보호에 만전을 기하라는 대통령 지시도 있었다.
몰카성범죄는 자신이 불법 촬영을 당하는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자신의 신체가 유포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피해자들은 피해를 인지한 순간부터 유포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함으로 일상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 피해 사실을 입증하는 동안 2차 피해도 받는다. 수사 과정에서 본인의 주요 신체 부위가 영상에 담겼다는 증거를 수집해 스스로 피해를 입증해야 하기 때문이다.
갈수록 늘어나고 치밀해지는 디지털성범죄에 비해 처벌은 미미하다. 성폭력 특례법에 따르면 카메라 등을 이용해 촬영을 하거나 유포한 범죄자는 5년 이하 징역형 또는 1천만원 이하 벌금형에 처한다. 하지만 징역형은 5.32%에 불과하고, 300만원 이하 벌금형이 79.9%다. 더 큰 문제는 피해자가 범죄자를 신고한 이후에도 유포된 영상이 모두 삭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디에 얼마만큼 퍼져 있는지 파악도 안된다.
여성가족부가 ‘디지털성범죄 피해자 지원센터’ 설치 후 100일간 1천40명의 피해자가 신고했다. 피해자 대부분(737명·70.9%)은 불법촬영, 유포, 유포 협박, 사이버 괴롭힘 등 여러 유형의 피해를 중복으로 겪었다. 총 피해건수 2천358건 중 유포피해가 998건(42.3%)으로 가장 많았는데 유포피해자 한 명당 많게는 1천건까지 유포됐다. 불법촬영자의 74%(591건)는 전 배우자, 전 연인 등 친밀한 관계이거나 학교나 회사 등에서 ‘아는 사이’였다.
디지털성범죄 피해는 유포물이 완전히 삭제되지 않는 한 피해자들의 고통이 계속된다. ‘한번 찍히면’ 완전히 없앤다는 게 현실적으로 어려워 피해자들은 심각한 후유증에 시달린다. 디지털성범죄가 사이버 상의 문제를 넘어 피해자의 삶까지 파괴시키고 있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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