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여러 부처와 기관에 ‘특수활동비’라는게 있다. ‘기밀 유지가 필요한 정보 및 사건수사와 그 밖에 이에 준하는 국정 수행활동에 직접 소요되는 경비’로 줄여서 ‘특활비’라고 한다. 급여 이외 비용인 특활비는 증빙자료가 필요 없고, 사용내역도 공개되지 않아 ‘검은 예산’ ‘눈먼 돈’이라고 불린다. 국회를 비롯해 검찰, 국방부, 경찰, 국가정보원 등에 할당돼 있다. 특활비는 집행내역이 공개될 경우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해치거나, 관련인의 신변보호에 현저한 지장을 초래할 경우 비공개가 가능하다. 하지만 사용처를 보고하지 않아도 되고 영수증 없이도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을 이용해 부적절하게 쓰여지는 사례가 많다.
국회 특수활동비 대부분이 교섭단체 대표나 상임위원장 등 국회직 의원들의 ‘쌈짓돈’으로 활용돼 온 것으로 드러나 국민들의 공분을 샀다. 참여연대가 국회사무처를 상대로 정보공개를 청구해 분석한 2011∼2013년 국회 특수활동비 지출 현황에 따르면, 교섭단체 대표는 활동비 명목으로 매달 6천만 원을 받아왔고, 상임위원장과 특별위원장은 매달 600만 원을 타갔다. 무슨 이유인지 법사위원장은 매달 1천만 원씩을 추가로 받아 간사에게 100만 원, 위원들에게 50만 원, 수석전문위원에게 150만 원씩 나눠줬다. 특수활동 여부와 상관없이 관행적으로 ‘제2의 월급’처럼 다달이 지급된 것이다. 이 돈이 어떻게 사용됐는지는 깜깜이다.
과거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와 신계륜 전 의원 등이 상임위원장 시절 받은 특활비를 생활비와 아들 유학비 등으로 썼다고 밝히면서 특활비 유용 문제가 불거진 바 있다. 의원들의 특활비 대부분이 사실상 특수활동과 무관하게 판공비나 개인 쌈짓돈처럼 쓰여지고 있음이 드러났다. 때문에 당초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 국회 특활비 제도를 폐지하던가 전면 손질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타당한 의정지원 비용이라면 일반 예산으로 투명하게 관리해야 하는게 맞다. 쌈짓돈으로 관행화 된 특활비는 가뜩이나 신뢰가 낮은 국회에 대한 국민 불신만 증폭시켰다.
여야가 13일 연간 60억 원가량의 국회 특수활동비를 폐지하기로 했다.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이 특활비에 대한 국민 비판 여론이 거세지자 폐지를 합의한 것이다. 듣던 중 반가운 소식이다. 말로만 내려놓겠다던 특권 하나를 드디어 내려놓는 모양이다. 국민이 정치인의 잘못된 관행을 바꿀 수 있음을 보여준 기분 좋은 사례다. 국회는 특활비를 폐지하면서 업무추진비를 대폭 증액하는 등의 꼼수를 부리지 말아야 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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