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말뫼의 눈물

이연섭 논설위원 yslee@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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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의 현대중공업 육상건조시설 한복판에 붉은색의 ‘골리앗 크레인’이 있다. 높이 129m, 폭 164m에 1천600t을 들어 올릴 수 있는 초대형 크레인은 스웨덴이 고향이다. 1970년 세계적 조선업체 코쿰스가 말뫼조선소에 설치해 스웨덴을 조선 최강국으로 이끌었다. 그후 스웨덴의 조선산업 침체로 조선소가 문을 닫게 되자 2003년 현대중공업에 단돈 1달러에 크레인을 넘겼다. 말뫼 주민들은 크레인이 해체돼 운송선에 실려 나가는 모습을 보며 눈물 속에 한없이 아쉬워했고, 스웨덴 국영방송은 그 장면을 장송곡과 함께 내보내면서 ‘말뫼의 눈물(Tears of Malmoe)’이라 표현했다.

현대중공업은 1달러에 산 크레인을 해체, 선적, 설치, 개조, 시운전 하는데 총 220억 원을 투입했다. 이 크레인은 2003년 하반기부터 실가동에 들어가 현대중공업이 세계 최초로 육상건조 공법을 성공시키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말뫼의 눈물’은 연극으로도 만들어져 국내 무대에 올려졌다.

한국 조선업 발전을 이끌었던 ‘말뫼의 눈물’ 크레인이 오는 25일 멈춘다는 안타까운 소식이다. 회사가 일감이 없자 공장을 35년 만에 처음으로 가동을 중단하기로 한 것이다. 현대중공업은 중국과 싱가포르의 저가 공세에 밀려 지난 3년 8개월 동안 해양플랜트 수주를 한 건도 따내지 못했다. 공장과 협력업체 직원 등 4천여 명이 일자리를 잃을 처지에 놓였다. 크레인은 앞으로 본연의 작업을 중단하고 도크에 있는 중량물을 옮기거나 LPG 저장탱크를 만드는 데 투입될 예정이다.

한때 대한민국 제조업의 심장이었던 울산이 흔들리고 있다. 조선과 자동차 등 주력 산업의 경쟁력이 약화돼 수출 부진에 빠졌고, 부동산 가격·인구 등 경기지표도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올 상반기 울산 수출은 전년 동기 대비 2.9% 감소한 331억4천만달러를 기록했다. 이는 울산만의 현상이 아니다. 2015년부터 3년 동안 대형 조선 3사가 있는 울산과 거제에서 4만 7천여 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하반기에도 수주난으로 대규모 구조조정이 예고돼 있어 불안감이 크다. 우리 경제에 적신호가 켜졌다. 불황은 제조업 전반으로 번지고 있다.

영국의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과거 한국이 수많은 유럽의 조선사를 파산으로 몰아갔듯이 이젠 중국이 한국 조선을 위협하고 있다”며 “말뫼의 눈물이 울산의 눈물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이 눈물은 울산을 넘어 대한민국의 눈물이다. 제2, 제3의 말뫼의 눈물이 흐르지않게 특단의 대책이 절실하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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