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2년 제정한 제4공화국 유신헌법 53조는 ‘대통령이 국가위기 상황이라고 판단될 때 헌법에 규정된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잠정적으로 정지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이를 근거로 단행된 조치가 ‘긴급조치’다. 대통령의 긴급조치권은 단순한 행정명령 하나만으로도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무제한 제약할 수 있는 초헌법적 권한이다. 국가위기 상황에 대한 판단은 대통령이 독자적으로 내릴 수 있어 사실상 반유신세력의 탄압도구로 악용됐다.
대통령 긴급조치는 1974년 1월 8일 일체의 헌법개정 논의를 금지하는 내용의 1호와 2호를 시작으로, 1974년 4월 민청학련사건을 빌미로 4호가 선포됐다. 이어 1975년 가속화된 유신철폐운동에 대처해 고대 휴교령 및 군대 투입을 내용으로 하는 7호, 그리고 1975년 5월 유신헌법의 부정·반대·왜곡·비방·개정 및 폐기 주장이나 청원·선동 또는 이를 보도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위반자는 영장없이 체포한다는 내용의 9호가 선포됐다. ‘긴급조치 종합판’으로 통한 긴급조치 9호는 10·26사태 후 폐기될 때까지 4년 이상 지속되면서 국민의 기본권을 짓밟고 800여 명에 달하는 지식인·청년학생 구속자를 낳았다.
2013년 3월 21일 헌법재판소는 긴급조치 1·2·9호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렸다. 헌재는 “정부 비판 일체를 원천 배제한 긴급조치 1·2호는 자유민주주의 기본질서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했고, 긴급조치 9호에 대해선 “헌법 개정 권력자인 국민은 당연히 유신헌법의 문제점을 주장하고 청원할 수 있는데 이를 금지한 9호는 정당성을 인정할 수 없다”고 했다.
박정희 정권 시절 ‘긴급조치 9호’ 위반 혐의로 징역형을 살았던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이 지난 24일 유죄가 확정된 지 40년 만에 열린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서울고법 형사11부는 “당시 판결받은 죄목인 대통령 긴급조치 위반은 헌법에 위반돼 무효이므로 죄가 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김 장관은 서울대에 재학 중이던 1977년 11월 학내에서 유신 헌법에 반대하는 시위에 가담했다가 긴급조치 9호 위반 혐의로 기소돼 이듬해 대법원에서 징역 1년과 자격정지 1년의 확정판결을 받았다.
검찰은 지난해 10월 ‘과거사 반성’ 차원에서 긴급조치 9호 위반을 이유로 유죄를 선고받은 후 재심을 청구하지 않은 145명에 대해 직접 재심을 청구하기로 했다. 김 장관도 여기에 포함된 것이다. 1970년대 국민의 입과 귀를 틀어막았던 ‘긴급조치’가 이제야 청산되는가 보다. 어찌됐든, 민주주의는 발전하고 있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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