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화성 축성 책임 정조시대 대표 정승
당시 재상들과 마찬가지로 성리학을 정학으로 여기고 도교, 양명학, 불교, 민간신앙 등을 모두 사이비 취급했다. 하지만 유학에서 강조한 ‘수기치인(자기를 수양한 후에 남을 교화하여야 함)’의 측면에서 볼 때 유교 이외 학문이 선용할 수 있으면 포용해야 한다는 의견을 보여 그가 재상으로 있던 시절엔 천주교에 대한 박해가 확대되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그의 큰 업적은 남다른 식견과 정조 대왕과의 깊은 인연으로 화성의 축성 책임을 맡은 것이다. 성을 축조함에 있어서는 빨리 서두르지 말 것, 화려하게 하지 말 것, 기초를 단단히 쌓을 것 등 3가지의 원칙을 지키며 모든 설계를 경영하고 지휘했다. 현재 그의 업적을 기린 채제공 뇌문비는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역북동 산 3-4번지에 위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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