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바위 날리기

2013년 10월8일, 태풍 ‘다나스’가 다가오고 있다. 모 방송의 저녁 뉴스가 속보를 내보낸다. 태풍의 최대 풍속이 초속 25~30m급이라고 전한다. 실험에 의한 결과라며 강풍의 위력을 소개한다. “커다란 바위까지 날려버릴 정도입니다.” 기자 멘트와 함께 자료 영상이 나간다. 화분이 쓰러지는 장면, 입간판이 넘어지고 우산을 든 기자가 비틀거리는 장면이 등장한다. 하지만, 바위가 날아가는 모습은 없다. 물론 그 해 날아간 바위는 없다. ▶2018년 8월23일 자정, 태풍 솔릭 소식에 전 국민이 불안했다. 모 방송이 속보를 내보낸다. 해안에는 초속 40m, 내륙에도 초속 30m의 강풍이 예상된다고 전한다. 이번에도 강풍의 위력이 소개된다. “초속 40m의 바람은 큰 바위도 날려 버릴 수 있습니다.” 화면에는 강풍 피해를 보여주는 자료 화면이 나간다. 부러지는 가로수, 범람하는 강물, 부서진 전봇대, 날아가는 비닐하우스 등이 방영된다. 이번에도 바위가 날아가는 모습은 없다. ▶부산 광안리 해수욕장 수변 공원에는 일명 ‘매미 바위’라는 게 있다. 바위에 이런 표식이 붙어 있다. ‘이 바위는 태풍 매미가 왔을 때 바다에서 밀려온 것입니다2003년 9월12일 19시30분경’. 당시 풍속이 ‘41m/sec’였다고 적혀 있다. 태풍의 위력을 상징하는 명물이 됐다. 하지만, 이 역시 ‘날아온 바위’는 아니다. 파고가 높아지면서 바닷물에 의해 이동한 것이다. ‘바다에서 날아온’이 아니라 ‘바닷물에 밀려온’이라고 분명히 적혀 있다. ▶역대급 태풍에 루사(2002년), 매미(2003년), 곤파스(2010년)가 있다. 기록된 최대 풍속은 각각 39.7m/sec, 60.0m/sec, 40.0m/sec다. 모두 ‘바위를 날려버릴 정도’라는 초속 40m/sec를 넘나들었다. 하지만, 바위가 날아갔다는 기록은 없다. 물론 바위가 날아가는 영상도 없다. 주택이 날아가고, 승용차가 뒤집히는 미국의 허리케인 역사에도 바위가 날아갔다는 기록은 없다. 기록에 관한 한 지구 상에서 바위를 날린 태풍은 없었다. ▶태풍 보도에 대한 비난이 높다. 공포심 유발 지적이 특히 많다. 표현 경쟁이 빚은 오류다. ‘간판’에서 ‘가로수’, 다시 ‘자동차’에서 ‘사람’으로 바람세기의 소재를 끌어올렸다. 그래도 직성이 풀리지 않자 마지막으로 등장한 소재가 ‘바위 날리기’다. “큰 바위를 날릴 태풍이 옵니다.” 이보다 자극적인 표현이 있을까. 그 덕에(?) 조회수를 늘린 언론이 이번에도 꽤 된다. ‘바위 날리기’ 보도가 그치지 않는 이유다. ‘기레기’ 취급엔 때로 근거가 있다.

 

김종구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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