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와 같은 중대한 결정은 지난 21일 법무장관과 공정거래위원장 사이에 있었던 합의문 서명으로 공식화됐다. 그런데 이 서명은 공정위가 있는 세종시가 아니라 서울 정부청사에서 이루어졌다.
‘고용 쇼크’로 다급해진 정부와 여당, 그리고 청와대는 지난 19일, 일요일에도 당·정·청 회의를 열었다. 이날 회의에서는 내년도 일자리 예산을 올해 증가율 12.6% 이상으로 확대하는가 하면 4조원 규모의 재정보강 패키지도 추진하는 등 가용한 모든 정책수단을 총 동원키로 했다.
이와 같은 일자리 창출의 심각성이 이번 당·정·청 회의를 계기로 실효를 거두길 기대하는 것은 모든 국민들의 한결같은 마음일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논하고 싶은 것은 이것을 계기로 세종시의 위상문제를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사실 대한민국의 경제정책을 다루는 기획재정부, 농수산축산부, 국토교통부, 노동부, 공정거래위원회 등 정부기구 70%가 세종시에 와 있다.
그런데 경제관련 정부회의는 70% 이상이 서울에서 개최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당·정·청 회의에서도 경제사령탑이 있는 세종시의 정부기관과 공무원들은 자료를 만들어 서울 출장을 가야 하는 등 바쁘게 움직여야 했다. 이런 일이 거의 다반사가 되어 있다는 것이 세종시 현안의 문제점으로 지적된 것은 오래됐다.
세종시는 올가을 행정안전부까지 내려오면 명실공히 ‘행정중심도시’가 되지만 세종시를 만든 것이 이런 식의‘서울 회의’를 위한 자료작업이 중심이 되고, 서울 출장에 시간과 경비를 소모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렇게 되면 세종시는 당초 계획했던 ‘국토균형발전’과는 거리가 먼 국토건설부 산하의 도시 하나를 만드는 것 밖에 되지 않는다.
그리고 공무원만 2만명이 넘는‘공무원의 외로운 섬’으로 전락할 우려도 있다. 따라서 세종시의 기능을 살리는 것이 중요하다.
경제부처가 집중되어 있는 만큼 세종시에서 정부간 정책협업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치열한 토론도 있어야 한다. 이 같은 기능이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정부관계자와 정치권에서 서울 중심의 프레임에서 과감히 벗어나야 한다.
이런 의식 변화 없이는 세종시가 아무리 부처가 늘어나고 인구가 30만을 돌파했다 해도 실질적인 국토균형을 요원한 것이 될 것이다.
특히 이 시점에서 우선 국회 분원만이라도 하루 속히 실현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세종시 정부청사는 서울 회의 자료준비와 서울 출장에 정부동력을 소비하는 것을 벗어나 생산적 기능으로 전환할 수 있을 것이다.
노무현 정부에서 탄생한 세종시이기에 현 정부에서 세종시의 가치와 기능을 살려야 하는 책임도 있다.
세종시에 들어서면 ‘개헌으로 행정수도 완성’이란 구호탑을 여기저기 보게 된다. 이 지역민들의 간절하고 소망을 표현 한 것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 정치 현실이 ‘개헌을 당장 추진할 상황이 아니며 더욱이 세종시를 위한 개헌은 시간이 필요하다’고 할 것이다.
그래서 지금 할 수 있는 국회분원 설치와 세종시 출범 때 가졌던 그 순수한 목적과 기능을 서두르자는 것이다.
이 본래의 목적을 놓치게 되면 세종시는 ‘공무원의 외로운 섬’으로 전락할 수 있고 걸핏하면 거론되는 ‘투기단속’ 대상의 아파트 도시가 될 우려가 있다.
변평섭 前 세종시 정무부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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