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치사하고 이기적인 어른

강현숙 사회부 차장 mom1209@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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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친정엄마가 가출했다. 이유는 아홉 살 손녀 때문. 평소 엄마 아빠 말은 잘 듣고 본인 말은 귓등으로 듣는 손녀의 태도에 화가 나 밤 10시에 집을 나가셨다. 다음 날 아침, 아이는 혼자 일어나 8시30분 학교에 갔다. 4교시 수업 후 ‘12시40분’ 학교 정문 앞에 기다리고 있던 할머니를 보고 아이는 안도하고, 사과했다. “앞으로 말 잘 듣고, 재미있게 놀아요”하며 할머니와 새끼손가락 걸며 가출사건은 우선 일단락됐다.

 

▶초등학생 2학년 딸 아이는 월ㆍ수는 4교시, 화ㆍ목ㆍ금요일은 5교시를 하고 오후 1시50분에 하교한다. 그 다음 학교 방과후 수업 후 발레, 미술 등의 학원을 돌고 나면 빠르면 3시30분, 늦은 날은 6시에 집에 온다. 아직 영어학원을 다니지 않아 그나마 여유로운 편에 속한다. 아이는 오후 남는 시간 대부분을 할머니와 놀고, 친구와 논다. 항상 놀궁리를 한다. 워낙 노는 걸 좋아해 때론 급한 화장실도 참고, 밥도 안 먹고 논다.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초등학교 저학년(1∼4학년)의 하교시간을 ‘오후 3시’로 늦추는 방안을 내놨다. 교과 학습량은 현재와 동일하게 유지하되 휴식·놀이시간을 늘려 고학년과 같이 하교하면 출산율이 높아질 것이라는 이야기다. 이는 아이들과 학교 현장을 모르는 무서운 그리고 이상한 발상이다. 학부모, 교사 그리고 교육감들이 반대하고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 및 제안에도 ‘초교 3시 하교 절대 반대’, ‘아이들을 더 이상 사육하지 마라’ 등 반대 의견이 속속 올라오고 있다.

 

▶실천교육교사모임에서 전국 초등학생 1천2명에게 ‘매일 6교시를 하고 오후 3시에 집에 가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더니 78.3%가 ‘싫다’고 답했다. 어떤 아이들은 어른들이 ‘치사’하고 ‘이기적’이라고 적었다. 자녀들이 오후 3시까지 학교에 있는다고 과연 아이를 많이 낳을까? 아이들은 오후 3시까지 학교에 있으면 행복할까? 개인적으로 일하는 엄마 입장에선 ‘턱도 없는 소리’다. 일에는 순서가 있다. 아이들에게 제대로 놀궁리를 할 시간을 주는 것이 우선이다. 노는 게 공부다. 같이 놀아주지는 못할망정 노는 거 방해하는 거 진짜 치사한 거 아닌가.

 

강현숙 사회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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