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부국원(富國園)의 재탄생

이연섭 논설위원 yslee@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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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시 팔달구 교동에 100여 년을 지켜 온 교동 터줏대감 ‘부국원(富國園)’이 있다. 엄밀히 말하면 옛 부국원이다. 일제강점기인 1923년에 지어진 2층 콘크리트 건물이다. 1920년대 유행하던 신고전주의 건축양식을 잘 보여주는 건물로 독특한 외관이 멋스럽다. 정면은 튀지 않는 색깔의 타일을 붙였고, 삼각형의 아치형 박공지붕은 안정감이 돋보인다.

 

부국원은 ‘나라를 부강하게 하는 곳’이란 뜻이다. 매력적인 이름처럼 보이지만, 그 나라라는 것이 대한민국이 아닌 일본이다. 농업의 기초가 되는 종자와 비료 같은 물품을 판매하던 ‘주식회사 부국원’이 사용하던 건물로, 식민지시대 일제의 농업침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문화유산이다. 1920년대 수원지역의 종묘와 종자 보급은 거의 부국원에서 이뤄졌다.

 

건물은 해방 후 1952년~1956년 수원지방법원 청사로도 임시 사용됐다. 1974년에는 공화당 경기도당 사무실로, 1979년에는 수원예총이 사용했다. 그러다가 개인에게 팔려 1981년부터 오랫동안 박내과 의원으로 쓰였다. 박내과 의원은 개원 후 용하다는 소문이 나며 수원은 물론 인근 용인과 화성 등지에서 환자들이 몰리며 문전성시를 이뤘다. 소독약 풀풀 날리던 ‘유명한 동네의원’ 박내과는 수원에서의 성공을 등에 업고 서울로 진출했고, 병원이 떠나자 한 인쇄소가 이사와 간판을 바꿔 달았다. 그 간판이 이 질곡 많았던 건물의 마지막 명패가 됐다.

 

부국원 건물은 주변 땅과 함께 개인에게 팔리며 2015년 철거 위기에 놓였으나, 일제강점기 수원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긴 건물을 보존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면서 수원시가 매입했다. 수원 근현대사의 질곡을 함께 하며 버텨온 건물이 철거되지 않게 한 것은 수원시의 훌륭한 선택이었다. 옛 부국원 건물은 지난해 등록문화재 제698호로 지정됐다. 이 건물 근처엔 일제강점기 금융업을 했던 조선중앙무진회사 건물 ‘구 수원문화원’이 등록문화재 제597호로 지정돼 남아있다. 1929년에 지어진 성공회 수원교회도 있다.

 

일제 식민통치의 잔재이자 근대 문화유산인 부국원 건물이 역사문화공간으로 탈바꿈했다. 근대역사문화 전시관으로 꾸며 지난 주말 오픈, ‘신작로, 근대를 걷다’ 전시와 함께 ‘신작로옆 모단길 콘서트’를 열어 시민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화성행궁 옆 공방거리부터 부국원을 지나 수원역 급수탑까지, 옛 신작로는 근대역사문화 탐방로로 조성했다.

 

옛 신작로를 걸으며 근대문화를 접해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 시대 역사와 문화를 좀 더 깊이 있게 이해하는 계기도 된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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