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한의학이 일제 강점기의 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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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역사를 보면 어느 나라든 제국주의 침략자들은 피지배 국가의 민족문화를 말살하려 했다. 그것이 식민지 지배를 수월하게 하고, 독립운동 등 저항을 막는 가장 효율적인 수단이기 때문이다. 우리 한민족의 역사에서도 일제강점기 대한제국의 한글, 문화 등과 함께 ‘한의학’도 민족문화말살정책의 피해를 크게 입었다.

 

조선시대까지 이 땅의 주류의학이었던 중세한의학은 대한제국 시절 고종황제에 의해 당시의 신문물이었던 근대 서양의학과 결합하여 통합의료를 시행했다. 근대한의학으로의 발전과정이었다. 당시 궁내부의 내의원과 전의감에 한의사와 양의사가 모두 전의로 임용되었고, 궁내부 위생국장이나 병원장은 한의사가 임용되었다. 아마도 세계최초의 양한방 협진이 아닐까 싶다.

 

또한 현(現) 서울대 의대의 전신인 관립의학교 초대교장으로, 종두법을 도입해 현대한의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한의사 지석영 선생이 임명됐다.

 

이렇게 차근차근 진행되던 근대한의학의 발전은 일제강점기가 시작되며 상황이 급변했다.

1905년 을사늑약으로 우리의 행정권이 일제의 통감부로 넘어가자, 한의와 양의가 공존하던 광제원은 강제로 폐쇄조치 되고 통감부가 설치한 대한의원에서 일본인 병원장에 의해 한의는 모두 쫓겨났다. 1914년 1월에는 한의를 의사가 아닌 ‘의생’으로 격하시키며 보건의료제도에서 공식적으로 소외시켜 버렸다. 마침내 36년의 일제강점기에 한의사제도 자체가 사라져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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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이후 일제강점기 동안의 식민문화를 극복하려는 많은 이들의 피땀 어린 노력에 의해 1951년 ‘국민의료법’이 제정되어 한의사 제도가 겨우 회복됐고, 아직까지 제도적 불평등이 의료제도 곳곳에 존재하지만, 지금의 현대한의학으로 발전하며 국민들과 함께하고 있다.

 

그런데 지난 9월10일 대한의사협회 회장이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고, ‘한의학이 치욕스러운 일제 강점기의 유산’이라는 허무맹랑한 주장의 기자회견을 했다. 적반하장의 전형이다.

 

일제강점기에 가장 큰 혜택을 입은 양의사들이, 일제강점으로 인한 피해가 가장 큰 한의학에 대해 일제강점기의 유산이라니, 60세가 넘는 고령의 나이에 ‘사이토’ 총독에게 폭탄을 던졌던 한의사 강우규선생을 비롯한 수많은 독립운동가를 체포하고 고문하여 ‘고문왕’으로 불린 일제 고등계형사 김태석이 광복 후 반민특위에서 친일을 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것과 똑같다. 이를 보면 의사협회는 민족정기를 말살코자 했던 친일파를 그대로 흉내내려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윤성찬 경기도한의사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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