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광주에 사는 20대 남자가 새벽에 두통이 심하다며 119에 신고했다. 이 남자는 119구급차를 타고 병원으로 가는 도중 구급대원을 폭행했다. 응급실에 도착해서는 진료를 받지 않고 그냥 집으로 돌아갔다. ‘가짜 환자’ 행세를 한 셈이다.
119구급차는 이 남자를 위해 경광등을 켜고 도로를 질주했다. 새벽시간이라 교통 장애가 별로 없었겠지만 출퇴근이나 대낮이면 복잡한 도로에서 다른 운전자들에게 민폐를 끼쳤을 것이다. 국민안전처는 위급상황을 허위로 신고하고 구급차를 이용해 의료기관으로 이송됐으나 진료를 받지 않은 이 남성에게 처음 과태료 200만원을 부과했다.
인천 강화에서는 몇 년 전 서울역과 영등포역에서 생활하는 노숙자들을 데려와 입원시킨 뒤 건강보험공단에서 요양급여 15억원을 타 낸 병원장과 사무국장 등이 구속된 사례가 있다. 구속된 이들은 노숙인 300여 명에게 접근해 술을 사준 뒤 취하면 가짜 앰뷸런스에 태워 자신의 병원에 치료 명목으로 입원시켰고, 반항하면 폐쇄병동에 감금하기도 했다.
강화 사례처럼 범죄에 가짜 앰뷸런스를 이용하기도 하지만, 교통체증이 심각한 러시아워에 긴급상황이 아닌데도 경광등과 사이렌을 켜고 교통법규를 위반하며 달리는 구급차들이 있다. 불편하고 짜증 나지만 길을 비켜주는 건 응급환자가 타고 있겠거니 하는 생각에서다. 그러면서 한편으론, 진짜 응급환자가 타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이재명 경기지사가 ‘가짜 구급차’에 칼을 빼들었다. 이 지사는 지난 14일 SNS 라이브방송에서 “가끔이지만, 가짜 앰뷸런스가 있다 보니 사람들이 길을 안 비켜준다. 이런 불신을 깨야 한다”며 응급환자를 태우지 않고도 요란한 사이렌을 울리며 달리는 ‘가짜 구급차’에 대한 강력한 단속과 행정처분을 담당 부서에 주문했다.
운행일지를 허위로 작성하는 구급차에 대해 적발시 과징금 부과에 그치지 말고 영업 정지ㆍ취소 등 법이 허용하는 최대의 행정처분을 하도록 요구했다. 단속도 매년 1회가 아닌 분기별 또는 반기별로 하고, 구급차 불법 운행 신고시 수백만원의 포상금을 지급하는 방안도 검토하도록 했다. 경기도 특별사법경찰단은 가짜 앰뷸런스 운행과 관련한 수사권을 확보해 나설 계획이다. 이 지사는 “사람들이 목숨 걸고 지켜야 할 규칙을 이용해 푼돈 벌려고 하면 되겠냐”며 “앞으로는 그런 짓 못하게 하겠다”고 말했다.
경기도는 지난해 민간 구급차 운행 현황을 점검, 13개 운행 업체의 불법 15건을 적발해 영업실적에 따라 최대 100여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한 바 있다. 가짜 구급차 근절이 경기도를 넘어 전국으로 확산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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