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후배 경찰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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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프로! 난 자랑스러운 경찰 동료인 자네를 이제부터 이렇게 부를까 해.

 

우리가 흔히 부르는 계급은 자네의 잠재능력을 그 틀 안에 가두기도 하고, 가끔은 자네의 엄청난 열정이 딱 그만큼이라고 착각하게 만드니까. ‘직업 선수’와 혼동할 수 있겠지만, 가정폭력, 아동학대 등 중요하고 민감한 사건을 처리하는 자네를 ‘프로’라고 부르지 못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해.

 

자네 요즘 힘들지? 어릴 적에 동화 속 사랑하는 남녀가 우여곡절 끝에 결혼하여 행복하게 살았다는 해피엔딩을 읽으며 가슴 설레곤 했을 텐데, 현실에서는 가정폭력과 학대가 반복되고 급기야 가슴 아픈 비극으로까지 가는 사건들을 보면서 한창 신혼의 꿈에 젖어 있는 자네의 마음이 어떨까 싶어.

 

가정 내 폭력이나 학대 사건은 겉으로 보기에는 평온해 보여도 순식간에 강력사건으로 바뀔 수 있는 위험요인이 잠재되어 있네. 또 다른 문제는 피해자 대부분이 사회적, 경제적으로 약자이거나 무기력에 빠져 폭력을 용서하고 묵인하면서 심지어 공권력의 개입도 거부한다는 거야. 전문가의 감각으로 잠재되어 있는 위험요인까지 감지해야 하고, 포기와 두려움이라는 단단한 벽 속에 갇혀 있는 피해자를 설득하여 밖으로 꺼내주어야 하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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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러한 특수성과 위험 때문에 법 규정과 절차가 마련되어 있지만, 자네도 알듯이 현장에서는 몇 가지 문제가 있네. ‘긴급 임시조치’를 시행하여 직권으로 가해자를 격리하지만, 이를 위반하더라도 실질적인 조치를 할 수 없다는 게 그 하나이지. 또한 ‘임시조치’는 사법작용이 아닌 순수한 행정경찰 작용이고 최종 법원의 결정 절차가 있음에도 일일이 검사의 청구를 거치도록 하고 있어 장기간이 소요되는 것도 반드시 개선되어야 하네. 그러나 무엇보다 자네를 힘들게 하는 것은 최선을 다했어도 결과가 좋지 않을 때 생기는 스스로에 대한 자책과 사회로부터의 비난일 거야.

 

혹시 자네, 현실의 어려움 때문에 가끔 지치거나 주저하게 되는 건 아닌지 걱정되네. 그럴 때에는 처음 경찰제복을 입고 거울 앞에 섰던 날을 떠올려 보게. 자네는 국민들을 위해 그 자리에 있다는 자부심과 사명을 절대로 잊지 말게. 그리고 범죄자에게는 엄격하고 약자에게는 진정으로 따뜻한 경찰이 되어 주게. 자네 아는가? 우리 일이라는 게 칭찬받고 인정받기 어렵다 해도 약하고 도움이 필요한 누군가에게 의지가 되는, 참 괜찮은 인생이라는 것을.

 

윤성혜 경기남부경찰청 여성청소년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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