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케랄라주 트리반드룸에 사는 시빌 윌슨이란 여성은 전통의상 사리를 판매하는 상점에서 10년간 일했다. 이 기간 월슨은 상점 안에 앉아 쉬어본 적이 없다. 종업원들이 의자에 앉는 것을 고용주가 금지했기 때문이다. 시빌 윌슨은 하루 12~14시간 근무하는 내내 서 있어야 했다. 4개층이 있는 건물에서 일하지만 엘리베이터도 탈 수 없었다. 손님이 계산대가 있는 1층으로 내려갈 때 걸어서 동행하고, 손님이 떠난 후 다시 계단으로 올라가야 했다.
케랄라주의 소매점 대부분은 여성 직원을 고용하고 있다. 고용주들은 CCTV를 통해 직원들이 앉거나 벽에 기대지 않는지 감시한다. 점심 시간은 30분이고, 화장실에 가는 횟수도 제한한다. 동료 직원과 얘기를 하면 월급을 삭감하기도 한다. 한 여직원은 손님이 옷을 고르는 동안 벽에 기댔다는 이유로 100루피(약 1천600원)의 임금을 삭감당했다. 이 사건이 발단이 돼 여성노조 ‘암투’가 여성 노동자의 ‘앉을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나섰다. 이들은 “여직원들이 화장실에 가고 싶을 때 갈 수 없는 탓에 물도 거의 마시지 않는다. 소변을 참고, 서서 일하기 때문에 요로감염, 신장질환, 정맥류 등의 질환을 앓는다”고 주장했다. 투쟁을 벌인 지 8년, 케랄라 주정부는 지난 7월 노동법에 직원의 ‘앉을 권리’ 조항을 신설하겠다고 밝혔다. 윌슨도 이제 상점에서 앉아서 쉴 수 있다.
‘앉을 권리’는 인도만의 얘기가 아니다. 한국의 백화점이나 면세점, 대형유통점에서 일하는 서비스노동자들도 ‘앉을 권리’를 유통업체와 정부에 촉구하고 있다. 전국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은 지난 2일 서울 롯데백화점 본점 앞에서 ‘유통서비스노동자 건강권 보장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정부가 서서 일하는 노동자의 건강 보호를 위해 대형유통매장에 의자를 비치토록 한 지 10년이 됐지만 현실은 변하지 않았다”며 “서비스업 노동자들은 의자 외에 화장실과 휴게실 등 노동자 건강을 위한 시설도 이용하지 못한다”고 비판했다.
연맹 산하 노동자들은 1일부터 ‘의자 앉기 공동행동’에 들어갔다. 각자 일하는 곳에서 손님이 없을 때만큼은 의자에 앉아 쉬는 것이다. 노동자들은 장시간 서서 일하다보니 발가락이 휘는 무지외반증, 족저근막염, 하지정맥류, 디스크 등 건강문제까지 겪고 있다. 여기에 갑질하는 고객까지 만나면 정신건강까지 황폐해진다.
백화점이나 면세점 등 화려한 건물과 달리 그 안의 노동자들은 병들어 가고 있다. 패스트푸드점이나 커피숍의 아르바이트생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들에게 앉을 권리, 쉴 권리, 존중받은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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