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여름 우리는 40도를 넘나드는 역대 최장의 살인적 폭염에 시달렸다. 그 당시 한낮의 도심 거리를 걷기도 어려웠고 열대야에 밤잠을 설치기 일쑤였다. 밤낮으로 집요하게 우리에게 끈질기게 달라붙던 무더위가 떠나지 않을 것 같은 걱정이 들기도 했지만, 때가 되자 슬그머니 꼬리를 내리고 사라지고 말았다. 이제는 지난 여름의 폭염은 거의 기억나지 않고 오히려 아침 저녁의 서늘한 바람에 옷깃을 여미게 된다.
계절의 어김없는 순환을 다시 한번 체감하면서 우리는 여전히 똑같은 부질없는 걱정과 기대를 반복하며 살고 있지 않은가 생각해 본다. 지난 여름 우리를 집요하게 괴롭혔던 무더위처럼 우리 대부분이 살아가는 일상은 경기 침체, 취업난, 주택난, 교육비 등 갖가지 걱정에 시달려 참으로 고되고 고통스럽다. 그러나 이 가을에는 잠시 세상 시름을 잊고 청명한 하늘도 쳐다보고 동네 숲길도 거닐면서 가을의 향취에 잠시 취해보면 좋겠다.
나이가 들수록 가을은 더욱 짧고 빠르게 지나간다. 더구나 겨울이 곧 닥쳐 올 것을 알기에 가을은 더욱 아쉽게 느껴진다. 여름 내내 푸르름을 자랑했던 초록 잎새 끝은 어느새 불그스레 타들어가기 시작했다.
이럴 때에는 잠시 일상의 굴레에서 벗어나 호젓한 자연 속으로 들어가 자신의 내면세계와 대화하거나 성찰하는 시간을 가져보면 좋지 않을까? 아니면 가을을 노래한 시를 혼자 낭송해보거나 ‘시월의 어느 멋진 날에’나 ‘잊혀진 계절’을 나직하게 불러보는 것은 어떨까? 보들레르는 <가을의 노래>라는 시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우리는 곧 차가운 어둠 속에 빠져 들리니 (...) 내 머리 그대 포근한 무릎을 벤 채, 뜨겁고 눈부신 여름을 그리워하며, 이 늦가을의 따스하고 노르스레한 햇살을 맛보게 해다오!”
김연권 경기대 다문화교육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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