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빚내는 대학생들

이연섭 논설위원 yslee@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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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실신’이라는 말이 있다. 비싼 등록금 부담에 학자금 대출을 받았는데 졸업 후 취업을 못해 실업자가 되는 동시에 신용불량자로 전락해 빚에 허덕이는 상황을 묘사한 것이다. 청년이란 단어에다 ‘실업자’와 ‘신용불량자’의 앞 글자를 딴 ‘실신(失信)’이라는 단어를 붙여 ‘청년실신’이라는 유행어가 만들어졌다. 대학생들이 처해있는 상황을 극적으로 표현한 슬픈 신조어다.

사회에 진출하기도 전에 빚에 짓눌린 대학생들이 해마다 늘고 있다. 청년실신시대가 앞으로도 지속될 전망이라니 안타깝고 답답하다.

 

더불어민주당 김병욱 의원이 금융감독원에서 받은 ‘학자금 목적 제외 은행권 대학생 대출 현황’ 자료에 따르면, 국내 17개 은행의 대학생 대출 규모는 올 7월말 기준 10만2천755건, 1조1천억 원에 달했다. 2014년 말과 비교해보면 대출 건수로 197.5%, 금액으로 77.7% 늘어났다. 대출뿐 아니라 연체액도 증가했다. 2014년 말 21억 원이던 대학생 연체액은 이듬해까지 동일했으나 2016년 말 28억 원, 지난해 37억 원으로 늘었고 올해 7월 말 기준으로 55억 원까지 불어났다. 연체 건수도 2014년 486건에서 2015년 682건, 2016년 1천48건, 지난해 1천605건, 올해 2천136건으로 크게 늘었다.

 

놀라운 것은 학자금과 관계없는 대학생 빚이 1조 원을 넘었다는 점이다. 4년 만에 약 3배로 증가한 것은 ‘고용 절벽’에 내몰린 청년층의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취업 비용과 준비 기간이 늘면서 청년·대학생 햇살론 등 정책성 대출을 받은 대학생이 늘어난 것이다. 청년들의 주거비 부담이 커지고 취업이 갈수록 어려워지면서 빚을 내 생활비를 마련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학자금 대출을 포함한다면 빚에 허덕이는 대학생들은 훨씬 많다. 빚은 자꾸 늘어나고 취업난은 사상 최악인 상황이라면 청년세대들의 미래는 불투명하고 불안할 수밖에 없다. 사회에 첫발을 내딛기도 전에 대학생들이 빚의 노예가 되고 있다니 앞날이 얼마나 암담할까? 대학 졸업장이 빚문서라는 말이 그냥 우스갯소리가 아니다.

 

1조 원이 넘는 대학생 빚은 대체로 악성이라는 점에서 향후 사회문제로 비화될 가능성도 있다. 취업문이 넓어지는 것은 고사하고 아르바이트 자리라도 있어야 대출을 조금씩 갚겠지만 이마저도 최저임금 인상 여파 등으로 더 어려워졌다. 상당수 대학생이 취업도 하기 전에 진짜 신용불량자가 될 판이다. 상황이 이러한데 어떻게 결혼 생각을 하고, 아이를 낳겠는가. 청년들 사이에서 유행하던 ‘헬조선’이란 자조섞인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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