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혼란스런 법·해석

작은 마을로 통하는 도로가 있다. 길이 50m, 폭 5m의 작은 도로다. 마을 주민 8명이 소유주인 사유지다. 10여 년 전부터 공동으로 조성해 사용하고 있다. 얼마 전 이 도로를 진입로로 인정하는 건축허가가 났다. 건축주는 도로 소유주가 아니다. 부지도 마을과 떨어져 있다. 도로 소유주들이 항의했다. 답변이 이랬다. ‘건축주가 도로에 지분이 없고, 마을에 거주하지 않더라도 건축허가는 적법하다.’ 건축허가과가 내린 ‘해석’이다. ▶건축 막바지, 상수도 연결 공사를 할 때가 됐다. 기존 상수도관은 도로에 매설돼 있다. 건축주가 도로를 굴착하려고 했다. 그러자 주민들이 굴착을 막아섰다. 굴착허가를 내준 곳은 상수도사업소다. 주민들의 이의제기에 답변이 돌아왔다. “건축주가 도로에 지분이 없고, 마을에 거주하지도 않으므로 주민 허락 없이 굴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면서 내줬던 굴착 허가를 ‘실수’라며 취소했다. 상수도사업소의 ‘해석’이다. ▶그 도로의 맨홀 뚜껑이 깨졌다. 추운 겨울과 여름 장마철을 지나면서 깨진듯했다. 담뱃값만 한 크기의 구멍이 생겼다. 밑이 훤히 보이는 구멍에 마을 주민들이 불안했다. 동물이 다치는 사고도 있었다. 맨홀 뚜껑만 교체하면 되는 간단한 보수였다. 주민들이 관할 구청에 민원을 제기했다. 건설도로과 답변은 이랬다. “그 도로는 사유도로이므로 행정기관이 시설을 보수해줄 수 있는 근거가 없다.” 건설도로과의 ‘해석’이다. ▶건축허가과는 사유 도로를 진입로로 하는 건축허가를 내줬다. 도로 소유주들의 사유재산권이 침해당했다. 상수도사업소는 도로 소유주들의 허락이 없었다며 상수도 굴착공사를 불허했다. 건축주가 수억원 들여 지은 건물이 무허가로 전락했다. 건설도로과는 사유도로 시설은 보수할 수 없다며 민원 해결을 거부했다. 구청이 살펴주지 않는 안전 사각 도로다. 용인시 수지구에서 진행 중인 어느 ‘도로 이야기’다. ▶건축주는 불법 사전 입주로 범법자가 됐다. 마을 주민들은 도로 점용권을 빼앗겼다. 건축주와 주민들은 법원에서 싸우는 중이다. 관할 구청은 ‘판결에 따르겠다’며 반년째 손을 놓고 있다. 법이 엉성한 것인가. 아니면 공무원이 무책임한 것인가. 이도 저도 아니면 법도 엉성하고 공무원도 무책임한 것인가. 규제 개혁이 늦다며 대통령은 노발대발하는데…. 현장에서는 여전히 ‘정신없는’ 규제가 국민을 혼란케 하고 있다.

김종구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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