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스쿨미투

이연섭 논설위원 yslee@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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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 TOO(나도 겪었다), #WITH YOU(당신과 함께), #WE CAN DO ANYTHING(우리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지난 4월 6일 서울 용화여고 학생들이 접착식 메모지에 이런 문구를 적어 창문에 붙였다. 이 학교 남자 교사들의 상습적 성희롱과 성추행을 폭로한 것이다. 졸업생들이 적극 나섰고, 재학생들이 가세했다. 학교 측은 처음에 “포스트잇을 당장 떼라”며 강압적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학생들은 ‘나는 당당하다, 자랑스럽다’며 떼지 않았다. 서울교육청이 조사에 나섰고, 교사 18명이 파면·해임·정직·견책 등 징계를 받았다.

 

용화여고에서 시작된 ‘스쿨미투’ 운동은 60여 개 학교로 퍼져 나갔다. 학생 독립운동 기념일인 3일에는 서울 광화문 파이낸스센터 앞에서 전국 중·고교 여학생 모임 등 30여 개 단체가 ‘스쿨미투 집회’를 열었다. ‘여학생을 위한 학교는 없다’라는 제목으로 열린 집회에선 여학생들의 미투 발언이 이어졌다.

 

전북의 한 공동체 대안학교에 다녔다는 여성은 “가족보다 더 신뢰하던 교사한테 성추행과 위력에 의한 성폭력을 당했다”며 “선생님은 ‘자유로운 사랑을 할 수 있다’고 했고 나는 거기서 계속 생활하려면 따르는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놨다. 이 여성은 “몇 달 지나고서야 상담치료로 그게 성폭력인 줄 알았다”며 “그가 교육관련 일을 하는 것을 막고 싶다”고 말했다. 학생들은 교사들이 “여자는 허리를 잘 돌려야 한다” “10개월 생리 안하게 해줄까?” “여자는 아프로디테처럼 쭉쭉빵빵해야 한다” “짧은 치마를 입고 다니니까 성폭력을 당하는 거다” 등의 발언을 했다고 주장했다.

 

참가자들은 선언문에서 “스쿨미투 고발은 여학생의 일상이 얼마나 차별, 혐오, 폭력에 노출됐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줬다”며 “스쿨미투가 고발한 것은 ‘일부 교사의 비상식적 만행’이 아니라 성폭력이 상식이 돼버린 학교 현장”이라고 강조했다. 집회에선 △학내 구성원 모두에게 정기적인 페미니즘교육 시행 △학생들이 안심하고 말할 수 있도록 2차 가해를 중단할 것 △학내 성폭력 전국 실태조사 △성별 이분법에 따른 학생 구분·차별 금지 △사립학교법 개정과 학생인권법 제정으로 민주적 학교 조성 등 5개 요구안을 제시했다.

 

스쿨미투 집회를 통해 교사들의 성적 수치심을 야기하는 언어와 신체접촉이 지속적으로 있어 왔음이 폭로됐다. 하지만 그동안 잘 드러나지 않았다. 해당 학교는 숨기기에 급급했다. 학생들 또한 상급학교 진학에 영향을 미치는 생활기록부에 부정적인 기록이 남지 않을까 걱정돼 침묵했고, 참아왔다. 그러나 상처는 곪아 터지는 법, 이제 수술을 해야 할 때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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