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군 복무 중 휴가를 나왔던 윤창호씨가 만취한 운전자의 차에 치여 뇌사 상태에 빠진 사고가 있었다. 국민들은 분노했고, 윤씨의 친구들은 ‘음주운전 교통사고로 친구 인생이 박살났습니다, 제발 도와주세요’라는 청원을 청와대 게시판에 올리며 음주운전 처벌 강화를 골자로 하는 ‘윤창호법’을 만들자는 입법청원에 나섰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것이 ‘윤창호법’이다. 윤창호법은 음주운전 가중처벌 기준과 음주 수치 기준을 강화하는 도로교통법 일부 개정안과, 음주운전으로 사람을 사망하게 할 경우 사형이나 무기징역 또는 최소 5년 이상 징역에 처하도록 하는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안이다. 민주평화당 이용주 의원 등 여야 의원 103명이 발의했다. 이용주 의원은 블로그에 “음주운전은 실수가 아닌 살인행위”라며 “윤창호법은 음주운전에 대한 인식과 의식을 바꾸자는 바람에서 시작된 법”이라고 했다.
그런 이 의원이 지난달 31일 서울 강남에서 음주운전을 하다 적발됐다. 여의도에서 술을 마시고 15㎞가량 혼자 운전했는데 혈중알코올농도가 0.089%로 면허정지 수준이다. 윤창호법 발의에 참여하고 음주운전을 한 이 의원의 언행 불일치에 국민 비판이 거세다. 청와대 게시판엔 ‘이용주 의원의 국회의원 자격 박탈을 청원합니다’라는 글까지 올라왔다.
이 의원 음주운전과 관련해 정치권은 조용하다. 침묵하고 있다. 음주운전 전과가 있는 현역 의원들이 상당수 있어 큰 소리 치기 힘든 상황이기 때문이다. ‘20대 국회의원 당선자 전과 현황’에 따르면 음주운전 전과를 가진 의원은 모두 18명이다.
자유한국당은 김기선ㆍ김용태ㆍ김성원ㆍ백승주ㆍ유재중ㆍ유민봉ㆍ이양수ㆍ한선교ㆍ홍철호 의원 등 9명이나 된다. 더불어민주당은 김철민(2회)ㆍ박용진ㆍ설훈ㆍ이상민ㆍ최인호 의원 등 5명이다. 바른미래당 유의동 의원, 민중당 김종훈 의원도 음주운전 전과가 있다. 민주당 소병훈ㆍ조정식 의원은 음주 측정을 거부해 벌금 처분을 받았다.
국회가 음주운전을 얼마나 가볍게 여기는지는 각 당 공천 기준에서 잘 드러난다. 민주당은 10년 내 2회, 15년 내 3회 음주운전을 해야 공천에서 배제한다. 한국당과 바른미래당, 정의당은 10년 내 3회이며, 평화당은 15년 내 3회 적발돼야 공천을 하지 않는다.
우리나라는 음주문화에 지나치게 관대하다. 음주운전 처벌 또한 너무 약하다. 그러다보니 이용주 의원 사건처럼 코미디 같은, 어이없고 기막힌 일이 벌어지게 된다. 음주운전은 남의 생명을 위협하는 중대 범죄로, 한 번이라도 저질러선 안 된다. 민주평화당과 국회가 이번 사안을 어떻게 처리할지 국민들이 지켜보고 있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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