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제한적’에의 불신

9월27일 김동연 경제부총리가 말했다. “우리나라의 건실한 경제 기반이나 과거 사례를 고려할 때 외국 자본의 급격한 유출 같은 시장 충격은 제한적일 것이다.” 미국 금리 인상에 대한 우리 주식시장 전망이었다. 미국 금리 인상은 필연적으로 우리 주식 시장에 변동을 가져 온다. 가장 큰 요소는 외국 자본의 급격한 유출이다. 투자자들이 이 점을 우려하고 있었다. 그런 때 김 부총리가 내놓은 전망이다.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다.” ▶주식시장이 곧바로 무너졌다. 10월 대폭락이 닥쳤다. 10월 한 달 코스피가 -13.37%, 코스닥은 -21.11%를 기록했다. 한 달 새 ‘반 토막’이 났다고 보면 된다. ‘8월의 저주’라고 불렸던 2011년 8월의 -11.86%보다 악화한 하락률이다. 이탈리아(-7.35%), 터키(-8.11%)보다도 나빴다. 하필 김 부총리 발언 직후부터 이렇게 됐다. 주식 시장을 예언할 순 없다. 그렇더라도 “제한적”이라는 예언과 ‘대폭락’이라는 결과 사이의 차이가 너무나 크다. ▶8월13일 터키 위기가 닥쳤을 때도 김 부총리는 같은 말을 썼다. “신흥국 전이 가능성은 제한적일 것이다.” 9월22일에는 뉴욕의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관계자에게 이 단어를 썼다. “한국 경제의 탄탄한 펀더멘털을 바탕으로 금융, 실물 시장이 빠르게 안정을 되찾고 있으므로 그 영향-북 리스크-은 제한적일 것이다.” 김 부총리가 ‘제한적’이라는 단어를 쓸 때 던지려는 메시지는 이렇게 짐작된다. ‘부정적 영향이 크지 않다’ ‘너무 걱정할 필요 없다…’. ▶실제는 안 그러니 그게 걱정이다. ‘제한적’이 다분히 다의적(多義的)이다. 주식 시장이 나빠진다는 것일 수도, 괜찮다는 것일 수도 있다. 북한 리스크가 있다는 것일 수도, 없다는 것일 수도 있다. 결과를 놓고 보면 면피적(面皮적)이기까지 하다. 붕괴된 주식 시장에는 ‘폭락 안 한다고 한 적 없다’고 할 수 있고, 북한 리스크가 현실화되면 ‘영향 없다고 한 적 없다’고 할 수 있다. 이게 김 부총리는 물론 많은 경제 관료들이 버릇처럼 말하는 ‘제한적’이란 말의 경제학적 의미다. ▶눈치 빠른 시장은 이제 믿지 않는다. 경제 관료가 말한 ‘제한적’의 뜻을 나쁜 방향으로의 경고라고 해석한다. ‘주식 시장 영향이 제한적이다’라고 말했다면 ‘주식 시장이 폭락할 것이다’라고 받는다. ‘북한 리스크가 제한적이다’라고 말했다면 ‘북한 리스크가 엄청날 것이다’라고 받는다. 불신이다. 경제관료들의 무책임한 단어 선택이 자초한 불신이다. 경제 관료들은 ‘제한적’이라는 용어를 오늘도 쓰고 있다. 미국 중간 선거 결과가 남북 경협에 미치는 영향을 어떻게 보느냐고 묻자 ‘제한적일 것’이라고 답했다. 영향이 있다는 건가, 없다는 건가. 없어져야 할 경제 불신 용어, ‘제한적’이다.

김종구 주필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