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한쪽의 풍요는 다른 쪽의 결여를 기반으로 하는 것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가을은 풍요함보다는 결여되는 것들이 살아가는 방식에 좀 더 마음을 기울여 보게 한다.
가을에 버리기로 마음먹은 것들은 먼저 삶의 결실인 씨앗과 열매를 버리고, 그리고는 자신의 색깔을 버린다. 하나가 푸른색을 버리면 다른 것들이 따라 푸른색을 버린다. 그리고 푸른색이 사라진 자리에는 다양한 색깔이 채워진다. 어떤 것들은 노랗게, 어떤 것들은 붉게, 또 어떤 것들은 갈색으로 물든다. 산에 부족한 색을 보충하면서 물드는 것이다. 그러면서 산이 더 아름다워진다.
가을에 만나는 것들은 그렇게 늘 서로 함께 있고 함께 간다. 같이 있어 같이 풍경을 만든다. 누군가의 결여가 다른 이의 결여보다 더해 보이거나 덜해 보이거나 없이 같이 같은 풍경을 만든다. 부족하고 가난해질수록, 그건 부족하고 가난한 것이 아니라며 위로하고 격려하듯 같은 모습으로 만나 동행하는 것이다.
결여를 결여로 보이지 않게 하는 그들의 절절한 삶의 방식. 결여되지 않은 것들은 이 절절한 감정을 알지 못할 것이다. 나의 삶과 다른 이의 삶을 같이 고민하는 절실함과 절절함을 모를 것이다. 그 절절함을 아는 사람들은 가을이면 마음이 울적하거나 누군가 그립다. 그럴 때 가을의 풍경은 큰 위로가 된다. 그래서 가을에 만나 가을처럼 함께 가는 사람은 말없이 같이 있기만 해도 친한 벗이 된다. 가을, 결여된 이들에게 한 번 더 관심을 가져볼 일이다.
이광용 수원여자대학교 기획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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