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그 아버지 뭐 하시노?” 2001년 개봉돼 인기를 모은 영화 ‘친구’에 나오는 대사다. 담임선생(김광규)이 학생을 혼내며 묻자, 그 학생(류오성)이 “건달입니더”라고 답한다.
우리는 개인 신상에 대해 불쑥, 묻곤 한다. ‘아버지는 뭐 하시냐’ ‘나이는 몇이냐’ ‘무슨 일하냐’ ‘결혼은 했냐’라고. 하지만 무심코 내뱉는 이런 말들이 때론 누군가에게 큰 상처가 된다. 타인에 대한 배려없이 하는 습관적인 행동과, 관습에 따라 내려온 조직내 제도가 불합리한 차별이 되기도 한다.
정부가 공공기관ㆍ공기업의 채용에 ‘블라인드(Blind)’ 채용을 의무화 한 것도 ‘평등한 기회ㆍ공정한 과정’을 통해 불합리한 차별을 없애기 위한 것이다. 블라인드 채용은 입사시 지원자의 나이와 외모, 출신지역, 최종학력, 가족관계 등을 보지않고 개인의 직무 능력과 역량으로만 채용하는 방식이다. 1990년대부터 일부 기업에서 실시했는데 정부가 2015년 모든 공공기관ㆍ공기업에 전면 도입하면서 확산됐다.
예전엔 이력서나 입사지원서에 사진과 함께 신체조건(키ㆍ체중), 출신지역, 가족관계, 학력 등을 적도록 하는게 일반적이었다. 심지어 아버지의 학력과 직업, 직위, 재산까지 기재토록 했다. 이런 내용이 편견과 차별의 요소가 된건 사실이다. 이에 부모 지위에 따라서 청년들의 입사지원이 차별받아선 안된다며, 2014년 박병석 의원이 ‘부모스펙 기재 방지법’을 발의하기도 했다.
이제 블라인드 채용은 민간기업에서도 일반화 됐다. 입사지원자의 배경과 스펙보다, 직무 역량과 잠재력에 집중해 인재를 채용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 일부 기업에선 아직도 개인 인적 정보는 물론 부모의 직장과 직위를 묻는 입사지원서를 요구하고 있다. 국내 대표 제과업체인 오리온이 신입사원을 모집하면서 입사지원서에 부모의 최종 직장과 직위를 묻는 항목을 필수 기재사항으로 했다가 비난을 샀다.
‘금수저’로 불리는 배경 좋은 지원자만 골라서 채용하려는 것 아니냐는 비난이 거세자 오리온측은 ‘필수가 아닌 선택’사항으로 수정했지만 항목을 없애진 않았다. 이에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엔 ‘이력서에 부모님 직업 물어보는 나쁜 기업 오리온 처벌해주세요’라는 글까지 올라왔다. 해당 글엔 ‘우리 부모님은 농사지으시는데 그럼 최종직장에 밭이라고 적어야 하나’ ‘국가인권위원회나 지상파 방송에서 공론화해야 한다’ 등의 댓글이 달렸다.
오리온측의 말대로 ‘부모의 직업과 직위 기재 항목이 그냥 관행적인 것’이라면 당장 삭제해야 한다. 이는 시대 흐름에 역행하는 구태로, 누가 봐도 공정해 보이지 않는다. 기업 이미지만 훼손시킬 뿐이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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