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대리수술과 CCTV

이연섭 논설위원 yslee@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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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시 한 정형외과 병원에서 수술받은 환자 2명이 잇따라 숨져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파주경찰서에 따르면, 지난 4월 A정형외과에서 70대 이모씨가 척추 수술을 받다가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수술 기록상 집도의로 돼있던 의사는 자신이 수술하지 않았다고 주장해 대리수술 의혹이 불거진 상황이다. 의료기기 영업사원이 수술을 대신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이씨가 숨지기 이틀 전에도 같은 병원에서 어깨 관절 수술을 받던 안모씨가 사망했다. 수술 기록상 병원 의사가 수술했다고 돼있지만 실제는 병원 행정원장이 수술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행정원장은 2011년 리베이트 사건으로 의사면허가 취소된 상태다.

최근 의료계에서 대리수술에 따른 환자 사고가 잇따라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지난 5월 울산의 한 병원에선 간호조무사 B씨가 2014년 12월부터 3년6개월가량 제왕절개 봉합 수술, 요실금 수술 등을 710여차례 한 것으로 드러났다. A씨는 “의사들 수술 장면을 어깨너머로 보고 배웠다”고 경찰에서 진술했다. 지난 9월 부산의 한 병원에선 원장이 환자 어깨 부위 수술을 의료기기 판매사원과 간호사, 간호조무사에게 시키고 환자가 뇌사상태에 빠지자 진료기록을 위조한 혐의로 검찰에 넘겨졌다. 병원 수술실 외부 CCTV에는 영업사원이 수술복을 입고 수술실로 들어가는 모습이 찍혔다.

무자격 수술, 대리수술 뉴스를 접한 국민들은 충격에 말문이 막힌다. 환자 목숨이 왔다갔다 하는데 어떻게 의료기기 영업사원 등에게 수술을 맡길 수 있는지 어처구니가 없다. 의사의 직업윤리가 어디까지 추락할 수 있는가 보여준 ‘대리수술 끝판왕’이라 할만하다. 대리수술은 목숨을 담보로 한 범죄다. 당연히 일벌백계해야 한다. 복지부가 대리수술 처벌을 강화했지만 자격정지 1개월이 6개월로 늘어나는 데 그쳤다. 면허 영구 박탈로 처벌 수위를 강화하고, 민·형사 책임도 엄하게 물어야 한다.

부도덕하고 비양심적인 일부 의사들 때문에 수술실에 CCTV를 설치하는 문제가 공론화됐다. 의료계에선 대부분 반대 입장이지만 대리수술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고, 환자의 알권리도 보호할 수 있어 환자단체 등은 찬성하고 있다. 경기도의료원 안성병원은 국내 처음으로 지난달부터 수술실에 CCTV를 설치, 운영하고 있다. 안성병원의 CCTV 운영지침은 환자 동의시에만 수술실 CCTV를 촬영·녹화하고, 영상은 의료분쟁 등이 발생한 경우에만 공개키로 했다. 환자·소비자 단체들은 불법행위를 방지하고 의사에 대한 국민 신뢰를 회복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환영 논평을 냈다. 전국적인 의무화 여부는 지켜봐야하는 상황이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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