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무너뜨린 법원의 존엄
‘내 재판도 틀렸다’ 법원 테러
혼란 끝내야 할 경고 삼아야
일단 들어가고 봤다. 그게 어디든 상관없었다. 파출 소장실, 서장실, 청장실…. 수사 중인 검사실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게 풋내기 기자의 일이었다. 그날 밤은 판사실이 목표였다. 당직 판사실 문을 벌컥 열었다. “뭐 재밌는 거 없어요?” 기록을 보던 판사가 눈이 휘둥그레졌다. 잠깐의 침묵이 흘렀다. “뭐 부탁하러 왔어요?” 그때 직감적으로 알았다. ‘들어오면 안 되는 곳에 왔구나.’ 세상에서 제일 길었던 몇 분이 흘렀다.
다음날 ‘난리’가 났다. 공보판사(당시 수석부장판사)가 기자실에 항의했다. ‘박 선배’가 불렀다. “김 기자, 어젯밤에 판사실 들어갔었냐. 법원에서 말이 나왔어.” 그랬었다. 판사실은 들어갈 수 없는 곳이었다. 들어가선 안 되는 곳이었다. 천방지축 날뛰는 사건기자도, 청와대를 안방처럼 드나드는 정치 기자도 판사실만은 출입할 수 없는 곳이었다. 그 후로는 들어가지 않았다. 27년이 지나도 민망한 판사실 추억이다.
법원이 갖은 존엄이다. 그 존엄이 있어 법치는 유지된다. 법원이 내린 판결이 종국적 판단이다. 인간계를 지배하는 사회적 질서다. 3심(審) 위에는 어떤 것도 설 수 없다. 번복되어서도 안 된다. 판례가 바뀔 순 있지만, 판결이 바뀔 순 없다. 그걸 결정하는 공간이 판사실이다. 인간계로부터 차단되는 게 맞다. 그 옛날 ‘윤 대법원장’도 이런 말을 했다. “법관은 다소 신비로워야 한다.” 이렇게 보호되어 온 것이 법원이다.
그 법원에 화염병이 날아들었다. 그것도 법원의 상징인 대법원에서, 대법원의 수장인 대법원장을 향했다. 재판 결과에 불만을 품은 사건 당사자가 한 짓이다. 대단한 시국사건도 아니다. 이념적 가치가 수반된 재판도 아니다. 그저 평범한 민사재판이다. 개인의 재산권이 걸려 있었다. ‘재판부가 판결을 잘 못해서 내가 손해를 입었다’는 게 범인 주장이다. 패소하는 당사자는 수만이고 수십만이다. 이들이 다 던진다면?
단박에 ‘재판거래’가 떠오른다. 구(舊)대법원을 향한 비난의 화두다. 권력에 입맛대로 재판을 써먹었다고 한다. 멋대로 판결하고, 멋대로 연기하고, 멋대로 발표했다고 한다. 책임 있다는 법관들이 줄줄이 검찰에 소환됐다. 여기에 결정적인 한방이 매겨졌다. 법관 회의의 결정이다. 책임 있는 법관을 탄핵하자고 의결했다. 정치권 선동이나 검찰 수사와는 차원이 다르다. 법관 스스로 ‘재판거래는 사실이다’고 공표한 것이다.
지켜보던 여론도 악화됐다. 잘못된 판결이라며 사건명이 특정되기 시작했다. 재판에 진 여승무원들이 이미 복직했다. 이석기 전 의원이 풀려날 거란 소문도 나온다. 법 감정이 바뀐 것이다. 저마다의 잣대로 판결을 평가하기 시작한다. ‘내 판결도 잘못됐다’며 법원 청사로 달려가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날아든 게 화염병이다. 이제 판사실 보호도, 판결문 존중도 없다. 법원을 향한 재판거래설의 역습만이 남았다.
비테는 회상록에서 이렇게 평했다. “대다수의 러시아인이 제 정신을 잃고 미쳐 버렸던 것 같다.” 트로츠키가 자서전에서 이렇게 반격했다. “그래서 역사는 전진해 가는 것이다…혁명과 혼란 속에서 곧 새 질서가 형성되기 시작한다. 사람과 사상이 새로운 수로를 따라 저절로 배치되어 간다.” 비테는 틀렸고, 트로츠키가 옳았다. 적어도 러시아 혁명이라는 단기 사건에서는 그랬다. 현재 혼란이 미래 변화로 정리되어 갔다.
기자는 27년 전 판단을 지금도 믿는다. 판사실은 보호받아야 하고, 판결은 존중받아야 한다. 법관들도 달라지지 않았다고 본다. 여전히 법의 존엄을 소중히 챙길 것이라고 본다. 그래서 기대를 버리지 않는다. 지금은 제정신을 잃고 미쳐 버린 것 같지만, 곧 새로운 법원 질서로 정리되어 갈 것이라고 믿는다. 화염병은 그 전환의 시기를 알려주는 경고였다. 그만 혼란을 끝내라는 경고, 모두 판사실로 돌아가라는 경고 말이다.
主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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