白沙(백사) 李恒福(이항복) 선생이 어려서 가지에 달린 감과 팔뚝의 주인이 누구인가를 명쾌하게 정리한 일화가 있다. 이항복의 집 감나무 가지가 옆집 권 대감 집으로 넘어가 있으므로 그 집 하인들이 자신의 것이라며 감을 따러 온 이항복의 집 하인을 야단쳤다는 것이다. 이항복의 옆집은 바로 당대의 勢道家(세도가)인 좌찬성 권철의 저택으로서 주인의 권세가 높으니 하인들도 권세를 부렸다고 한다.
이에 이항복은 감나무 뿌리가 엄연히 우리 집에 내리고 있으니 우리 것이라는 주장을 펼쳤다. 다음날에 이웃집 권철 대감을 찾아갔다. 그리고 주먹으로 문창호지를 뚫고 방안으로 주먹을 내밀었다. 대감님! 그 팔은 누구 팔입니까? 당연히 네 팔이지! 그러면 대감님 댁으로 넘어온 저 감나무는 누구네 것인가요?
대장간에 놀러 온 이항복 선생은 자그마한 쇠붙이를 한두 개 주머니에 넣고 슬며시 집으로 돌아가곤 했다. 양반의 자제이니 어찌할 수도 없었던 대장장이는 어느 날 뜨겁게 달군 쇠붙이를 조금 식힌 후에 이항복 어린이의 시선에 잘 보이는 곳에 두었다. 예상대로 어린 이항복은 슬며시 쇠붙이를 깔고 앉은 후 주머니에 넣을 요량이었는데 수 백도는 되었을 쇠붙이 열기로 인해 옷이 타들어가므로 ‘앗 뜨거워’하면서 황급히 자리를 떠났고 도련님 골탕먹이기에 성공한 대장장이는 쾌재를 불렀다.
세월이 흘러 대장장이가 고령으로 일하기 어려워지자 성년이 된 이항복은 그를 불러 자신의 집 창고에서 쇠붙이가 한가득 들어 있는 항아리를 꺼내와 전달한다. 일종의 쇠붙이 保險(보험), 古鐵(고철)연금, 鐵製(철제)저축이었던 것이다. 대장장이는 과거 이항복의 옷이 타고 엉덩이에 화상을 입힌 일을 후회하고 용서를 빌며 고마운 마음으로 고철보물을 받아간다.
이항복(1556~1618)은 권율장군의 사위로도 유명하다. ‘감나무 팔뚝사건’에 나오는 좌찬성 권철의 아들이 권율이다. 1593년 2월 지금의 고양시에서 왜군을 크게 무찌른 幸州大捷(행주대첩)의 영웅 권율 장군이다. 임진왜란 3대첩은 한산도대첩, 행주대첩, 진주성대첩이다. 말(馬)에게 쌀을 뿌려 물이 풍족한 것으로 가장하여 왜군의 공격을 막아낸 오산시 소재 세마대 전설의 주인공 권율장군이다.
훗날 萬人之上 一人之下(만인지상 일인지하)라는 領議政(영의정)에 오른 英特(영특)했던 이항복은 오늘날의 연금, 의료보험의 선구자가 아닐까 생각한다. 옆집 대감과는 팔뚝으로 대결하여 설득하는 용기가 필요하고, 건너편 대장장이의 노후를 위해 쇳조각을 저축하는 지혜를 발휘해야 하는 시대다.
이강석 경기테크노파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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