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살의 철거민이 극단적 선택을 했다. 서울 마포구 아현2 재개발 지역에서 어머니와 함께 쫓겨난 박모씨가 거리와 빈집을 전전하다 한강에 투신했다. 박씨의 시신은 지난 4일 한강수색대에 의해 양화대교와 성산대교 사이에서 발견됐다.
박씨는 유서에 “아현동 OOO-OO호에 월세로 어머니와 살고 있었는데 3번의 강제집행으로 모두 뺏기고 쫓겨나 이 가방 하나가 전부다”라며 “추운 겨울에 씻지도 먹지도 자지도 못하며 갈 곳도 없다. 3일간 추운 겨울을 길에서 보냈고 내일이 오는 것이 두려워 자살을 선택한다”고 썼다. 이어 “저는 이렇게 가더라도 어머니께는 임대아파트를 드리고 싶다”며 어머니를 걱정했다. 고인의 어머니는 “아들이 죽었는데 임대아파트가 무슨 소용이냐”며 통곡했다.
시민단체들은 주택 철거과정에서 문제가 많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철거용역 일꾼들이 물리력을 행사했는데 현장에는 강제집행을 관리·감독하는 집행관도 없었고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경찰도 보이지 않았다고 했다. 재건축조합이 강제집행 이틀 전에 계획을 미리 알리는 ‘사전 통보 원칙’을 지키지 않았다는 지적도 나왔다. 관계자들이 안전조치를 제대로 실행했는지 진상을 파악하고, 관련 규정을 어겼다면 엄중히 처리해야 한다.
하지만 이런 잘잘못을 떠나 앞날이 창창한 한 젊은이의 목숨을 지켜주지 못한 죄책감이 앞선다. 얼마나 절망했을까. 얼마나 두려웠을까. 홀로 남겨진 노모는 또 어찌 살아갈까. 한겨울 맹추위만큼 가슴이 시리고 아프다.
용산참사가 우리 사회를 할퀴고 간지 10년이다. 당시 용산 재개발 보상문제를 둘러싼 갈등 과정에서 철거민 5명과 경찰 1명이 사망하고 24명이 다쳤다. 10년이 흐른 지금도 전국에서 철거민들의 고통은 계속되고 있다. 죽음으로 내몰린 박씨 사건이 단적인 예다.
경기, 서울 할 것 없이 도심 곳곳에서 재개발 붐이 일고 있다. 수원만 해도 재개발 사업지구가 10곳이 넘는다. 재개발사업은 ‘비능률적이고 수준 미달인 도시 기능을 회복하기 위해 도시 내 오래된 주택이나 미관을 해치는 건물 등을 헐고 아파트나 상가 등을 새로 건설하는 사업’이라고 말한다. 옛 동네를 싹 밀어버린 후 대규모 아파트 단지와 상업시설이 빼곡히 들어설 것이다. 추진하는 측에선 상권이 활성화되고 주민 편의가 크게 향상될 것이라 말한다.
재개발로 그곳에 살던 사람들은 자의든 타의든 정든 삶의 터전을 떠나야 한다. 쫓겨나듯 떠나는 사람들이 상당수다. 이중엔 다른 곳에서 정주할 형편이 안되는 사람도 많다. 철거민을 위한 주거대책이 절실하다. 어디에 박씨처럼 극단으로 내몰린 사람들이 있을 지도 모른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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