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눈이 내린다는 소설(小雪)이 지나고 어느덧 동지(冬至)가 다가온다. 오색찬란하게 산들을 치장했던 단풍잎들도 자연의 밑거름이 되고자 토양의 자양분으로 회귀했고 지금 헐벗은 나무들은 보기엔 나쁘지 않다.
때마침 얼마 전 이웃이 발코니에서 키우는 감나무 사진을 보내왔다. 사진을 보니 겨울의 초입, 고즈넉한 농촌마을 어귀 감나무에 선홍빛 감이 가득한 훈훈한 시골풍경이 절로 그려졌다.
보통 시골에서는 풍성함과 넉넉함에 감사하면서 나눔의 마음으로 겨울철 식량이 부족한 날짐승들에게 몇 개의 감을 까치밥으로 남겨놓곤 했다. 그런데 문뜩 이런 생각도 들었다. 까치밥 정신이 21세기 대한민국에도 남아있긴 한 것일까?
동양의 스승 공자는 “다른 사람을 대할 때, 그 사람의 몸도 내 몸같이 소중히 여겨라. 그리고 네가 다른 사람에게 바라는 일을 네가 먼저 베풀어라”라고 가르치며 사람 사는 세상의 덕목 중 ‘배려’가 가장 중요함을 강조했다.
이처럼 배려는 동서고금을 막론해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는 중요한 덕목으로 ‘나 이외의 다른 사람을 도와주거나 살펴주는 고운 마음’이다. 가족, 친구, 이웃 등 주변 사람과 소통하며 배려하는 삶이야말로 고귀한 삶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4차 산업혁명으로 최첨단 문명의 편리함을 누리며 어려움 없이 살아가는 지금 시대는 배려의 마음을 가질 여유가 없어 보인다.
대표적인 사례로 외상환자 이송 시에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심각한 부상을 입은 외상환자의 경우, 골든타임 내에 신속하게 헬기를 이용해 병원으로 이송해야 한다. 외상환자에게는 시간이 곧 돈보다 귀한 생명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몇 병원 주변지역 주민들이 헬기소음으로 불편으로 호소하며 관공서에 헬기이송을 막아달라는 민원을 제기하는 등 눈살을 찌푸리는 사례가 발생하고 한다. 심지어는 119구급차가 긴급히 달리고 있을 때 사이렌 소리까지 거슬린다며 불편을 토로하는 모습도 보인다.
이들의 불편함엔 공감하지만, 이는 조금만 참고 배려하면 되는 일이다. 삶과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고 있는 하나의 생명을 두고 이렇게 생각한다는 것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을 감출 수가 없다.
우리는 한강의 기적을 일궈오며 눈부신 발전의 빛나는 대한민국을 만들어왔다. 그러나 치열한 경쟁 속에서 우리는 정말 소중한 것을 잊어버리며 개인주의와 이기주의가 팽배한 삶을 살아온 것도 사실이다.
아직 늦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우리가 외면했던, ‘까치밥’의 전통에 담긴 넉넉한 배려의 마음을 다시 한 번 일깨워야 한다. 가을의 끝 무렵 잘 익은 홍시를 맛보며 ‘까치밥’에 담겨진 의미를 되새겨보자. 사람답게 사는 세상, 훈훈한 인정이 넘치는 세상은 먼 데 있는 곳이 아니다.
김봉균 경기도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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