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97년 출판된 소설 <아버지> (김정현 作) 에서 주인공인 한정수는 췌장암 투병 중 친구인 남 박사에게 안락사를 요청한다.
암이 주는 고통뿐만 아니라 이 고통으로 비롯되는 가족들의 고생, 무너지는 인간으로서의 존엄성 등이 안락사 요청의 원인이 된 셈이다.
신간도서 <나의 죽음은 나의 것> 의 저자인 알렉산드로스 벨리오스도 이 같은 이유로 ‘죽을 수 있는 권리’를 외쳤다.
생전 그리스 언론계의 요직을 두루 거친 그는 지난 2016년 9월 스스로 약을 투여하는 ‘비조력 안락사’ 로 생을 마감하기 전 1년 간의 삶을 이 책에 담아냈다.
그는 투병 생활 내내 통증을 견디기 힘들어 했음은 물론 어느 순간 암세포가 뇌로 전이되어 식물인간이 될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에 휩싸여 안락사를 요청한 상태였다.
하지만 이 요청은 그리스 내에서 법 체제로도, 의료제도에서도, 종교 교리적으로도 받아들여지지 않아 결국 스위스의 조력죽음 단체에까지 요청했지만 거절당한채 비조력 안락사에 이르렀다.
그가 자살하기 3개월 전 그리스 현지에서 출간된 이 책에는 그가 사망 1년 전 간암 말기 판정을 받은 후 병마와 싸우면서 느낀 고통은 물론이며 안락사의 필요성에 대한 인문학적 호소를 외친 ‘죽음의 권리’ 도 담겨있다.
아울러 ‘다가오는 죽음에 의연히 맞서기’와 ‘안락사의 필요성 역설’ 에 초점을 맞춘 데 이어 방송과 SNS 등을 통해 죽을 수 있는 권리를 외치며 안락사를 향한 사회 인식과 제도 개혁이 이뤄지길 요청했다.
그는 죽기 전날 촬영한 페이스북 동영상에서 손수 작별노트를 읽으며 가족과 지인들에게 용서를 구하고 떠났다.
작별노트의 내용에는 ‘내게 남은 시간은 이제 몇 주도 채 되지 않는다. 그 사이에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급격히 퇴행하게 될 내 상황을 직시하면, 맑은 정신으로 떠나기 위해서 여기에서 끝내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평온하게 떠난다. 나는 품격을 지키고 살았고 이제 품격을 지키며 죽음을 선택한다.’ 라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이번 도서를 통해 우리는 단순 안락사 찬반 논쟁을 떠나 이를 향한 사회 인식과 제도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을 전망이다.
권오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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