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손학규의 참 고된 정치

2006년 10월. 손학규 전 경기지사가 탄광을 찾았다. 아침 일찍 인부들과 갱으로 들어갔다. 궤도차로 들어간 곳은 지하 200m 막장이다. 일이 시작되자 서슴없이 삽을 들었다. 채굴기를 들고 갱 벽을 부쉈다. 자기 키보다 큰 지지목을 지고 옮겼다. 이렇게 8시간의 노동을 모두 끝냈다. 때마침 취재차 현장에 있었다. 막걸리를 곁들인 저녁 식사가 마련됐다. 옆에 앉은 인부가 내게 말했다. “탄광 일을 해본 모양이다. 정말 독한 사람이다.” ▶잘 나가는 대권 후보였다. 당연히 여의도행을 택할 거라 봤다. 하지만, 그는 고된 정치를 택했다. 퇴임 당일 남행 열차에 몸을 실었다. 일행이라야 초라했다. 부인과 ‘김 비서’, 그리고 자원 봉사에 나선 ‘대학생’이 전부였다. 그래도 끝까지 했다. 탄광, 농사, 건설현장 등을 그렇게 찾아다녔다. 대장정 마지막 날 지지자들이 서울역에 집결했다. 하필 북한의 핵실험 특보(特報)가 터졌다. 모든 게 묻혀버렸다. 대통령 후보도 되지 못했다. ▶2014년 8월, 그가 또다시 고된 선택을 했다. 앞선 재보궐 선거에서 낙선했다. 지사를 지냈던 경기도(수원병)에서의 충격적 패배였다. 정계은퇴를 선언한 그가 간 곳은 전남 강진이다.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한 환경이었다. 토굴이라 알려진 집은 폐가에 가깝다. 뱀이 우글거려 백반 가루를 뿌려야 했다. 이번에는 ‘김 비서’도 가지 않았고 ‘자원 봉사자’도 없었다. 부인과 단둘이 그렇게 2년을 보냈다. 70을 바라보는 나이에 견디기 힘들었을 생활이다. ▶그가 또 고된 선택을 했다. 이번에는 단식이다. 국회 본관 로텐더홀에 앉았다.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요구했다. 추운 날씨 속 건강을 걱정하는 이들이 많았다. 의료진이 수시로 건강을 체크했다.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가 찾았다. 손 전 지사가 웃으며 말했다. “난 괜찮다. (단식을)오래 하겠다.” 결국 거대 양당이 ‘검토하겠다’고 밝혔고 단식은 중단됐다. 열흘여나 굶었다. 이번에는 얻어낸 게 있을까. 언론은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가능성에 여전히 회의적이다. ▶손학규는 경기도지사 출신이다. 경기도에서 태어났다. 부침은 있으나 여전히 경기도를 대표한다. ‘정치 쇼’라는 지적이 있다. ‘정치 꼼수’라는 비난도 있다. 그런데 경기도민-모두는 아닐지라도-의 눈엔 다르게 보이기도 한다. 지역적 뿌리 없는 ‘경기도 정치인’의 어쩔 수 없는 ‘생존기’랄까. 그렇더라도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 이제는 그만해야 한다. 고된 정치를 버리고, 평범한 정치를 해야 한다. 그가 평생 말해왔던 가치가 ‘진정성’이다. 진정성이야말로 ‘튀는 비범함’이 아닌 ‘조용한 평범함’에 더 어울릴 수 있다.

김종구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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