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시간강사

이연섭 논설위원 yslee@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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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조선대 서정민 강사가 열악한 시간강사 처우를 비관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두 아이의 아버지였던 그는 교양필수 영어를 1주일에 10시간씩 강의하고 월 100만 원을 받았다. 교수 논문을 대신 써주며 버텼지만, 대학은 이마저 냉정하게 잘라버렸다. 서 박사는 결국 자살을 했고, 유서에 ‘저는 스트레스성 자살입니다’라고 밝혔다.

전국에 시간강사가 7만5천여 명에 이른다. 2017년 기준 대학 강의의 34.2%를 맡고 있다. 이 대학 저 대학 옮겨 다니며 강의하느라 학교내 연구실도 없어 ‘보따리 장사’로 불린다. 시간강사의 신분은 불안하고 처우는 매우 열악하다. 한국비정규교수노조에 따르면 1주일에 6시간 강의하는 사립대 시간강사가 퇴직금까지 합쳐 연봉이 900만 원 정도다. 이들은 전임교수들의 잡무에 동원되거나 논문 대필을 하는 경우도 있다. ‘마치 노예같다’고 말하는 이도 있다.

서 박사의 죽음을 계기로 대학강사의 참담한 실태가 알려지면서 2011년 강사에게 교원 지위를 보장하는 강사법(고등교육법)이 개정됐다. 그러나 대학들이 재정난을 이유로 반대하면서 법 시행이 계속 유예됐다. 8년 간의 유예를 거듭하다가 지난달 개정안이 다시 국회를 통과했다. 내년 8월 강사법이 시행되면 대학은 시간강사에게 법적으로 교원 지위를 주고, 임용 기간은 1년 이상을 원칙으로 해야 한다. 방학 중에도 임금을 지급해야 하며, 4대 보험에 가입해야 한다.

그런데 결과는 역설적으로 시간강사를 대거 해고하려는 움직임으로 나타났다. 대학이 감당해야 할 재정 부담 때문이다. 여러 대학이 시간강사를 줄이고 공백을 메우기 위해 강의 대형화, 사이버 강의 확대, 과목 통폐합 및 학점 축소, 전임교수 강의 늘리기, 졸업학점 축소 등을 준비하고 있다.

강사법 통과로 처우개선과 신분보장을 기대했던 시간강사들이 오히려 실직 위기에 내몰리게 됐다. 시간강사들은 그동안 대학이 헐값에 부려먹고 이제 인건비가 좀 든다는 이유로 내팽개치는 행태에 배신감을 느낀다며 거리로 나서고 있다. 부산대에선 시간강사들이 파업에 돌입했다. 이 대학 시간강사는 1천100여 명에 이른다.

대학이 강사법을 빌미로 강좌를 축소하거나 시간강사를 대량 해고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강사들의 생존권도 문제이고, 학생들 또한 교육의 질 저하에 따른 피해를 입게 될 것이다. 저임금과 힘든 근무환경에도 불구하고 대학 교육의 한 축을 담당해왔던 시간강사들이다. 이들의 고용 안정과 처우개선은 필요하다. 정부와 대학은 비용문제 등 부작용을 최소화할 보완책을 마련해야 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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