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과 가정의 양립은 오늘의 문제만은 아닌 것 같다. 헤르만 헤세의 소설 속 주인공인 싯다르타는 당대 최고의 성인이었던 고타마 싯다르타처럼 구도자의 길을 떠난다. 험난한 수행의 길, 그 고난의 길을 포기하려던 순간 싯다르타는 깨달음을 얻지만, 아들은 만나면서 위기에 빠진다. 어린 아들도 갑작스러운 어머니의 죽음과 초라한 아버지와의 만남으로 충격을 받는다. 아들은 끝내 아버지를 거부하고 집을 나가 버린다. 그때야 비로써 싯다르타는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수행을 시작하면서 한 번도 찾아뵙지 않은 자신의 부모를 떠올리게 된다. 궁극의 깨달음도 인간의 삶도 가정이란 울타리를 벗어나서는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도 일과 가정의 양립은 중요한 이슈이다. 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2018년 일 가정 양립 지표’를 보면 18세 미만의 자녀를 둔 아버지의 고용률은 자녀 연령
이 어릴수록 높고, 어머니의 고용률은 어릴수록 낮은 경향을 보인다. 미혼 남녀의 고용률은 큰 차이가 없지만, 여성은 결혼을 시작으로 임신, 출산, 자녀교육, 가족돌봄 등으로 경력단절을 경험하게 된다. 그렇지만 2017년 사회조사 결과를 보면 87.2%가 여성도 직업을 가져야 한다고 응답했고, 57.1%는 가정 일과 관계없이 생애 전반에 걸쳐서 여성도 자신의 일을 가져야 한다고 답했다. 그러나 2018년 부부의 가사분담실태를 보면 부인의 77.7%가 본인이 가사를 주도한다고 응답했고, 공평하게 분담한다는 응답은 19.5%에 불과했다.
몇 가지 통계로 단언할 수는 없지만, 가사분담을 통한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는 개인의 성취나 가정 경제만의 문제는 아니다. 정부는 일과 가정생활을 조화롭게 병행할 수 있도록 가족친화 인증제도나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제도와 같은 다양한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경인지방통계청도 가족친화 기관으로 인증을 받았고 일과 가정이 양립할 수 있는 직장 문화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제도를 활용하고 있는 직원들의 만족도는 아주 높다. 특히 갓난아기를 혼자 돌보는 아내를 위해 일찍 퇴근하는 남자직원들의 만족도는 더 높다. 아내와 함께 가사를 분담하고 아이를 돌보는 것이 업무에 더 집중할 수 있도록 만든다고 한다. 이처럼 좋은 제도가 있어도 그것을 실행할 수 있는 환경과 분위기를 만들지 않으면 안 된다. 기해년 새해부터는 나부터 솔선수범해야겠다고 다시금 다짐해본다.
손영태 경인지방통계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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