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수저계급론의 고착화

이연섭 논설위원 yslee@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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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립주택에 살고있음’, ‘알바 해본 적 있음’, ‘1년 내내 신발 한 두 켤레로 번갈아 신음’, ‘고기 요리를 할때 국으로 된 요리로 자주 먹음’, ‘냉동실 비닐안에 든 뭔가가 많음’, ‘부모님이 정기건강검진 안받음’, ‘집에 비데가 없음’, ‘집에 차가 없거나 연식 7년 이상’, ‘여름에 에어컨을 잘 안틀거나 아예 없음’, ‘본가가 월세이거나 1억이하 전세’…. 젊은이들 사이에 유행하던 ‘흙수저 빙고게임’에 나오는 항목들이다. 가로, 세로 5개씩 모두 25개 예시가 나온다. 이중 가로, 세로, 대각선 어느 방향으로든 5개 항목이 한 줄로 연결되면 그 사람은 ‘흙수저’란다.

금수저, 은수저, 동수저, 흙수저 등 이른바 ‘수저계급론’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부(富)에 따라 인간의 계급이 결정된다는 자조적인 표현이다. 수저계급론은 청년실업, 부익부 빈익빈 등의 각종 사회 문제와 맞물리면서 공감을 얻고 있다. 개인의 노력보다 부모 능력으로 사회의 출발선이 결정된다는 씁쓸한 세태는 많은 젊은이들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준다.

‘노력하면 자신의 사회·경제적 지위를 높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청년이 최근 4년사이 15% 포인트가량 떨어져 ‘수저 계급론’ 인식이 고착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2013년과 2017년 통계청 사회조사를 분석해 최근 발표한 결과, 자신의 계층 이동 가능성을 높게 본 30세 미만 청년이 2013년 조사에선 53.2%였지만 2017년 조사에선 38.4%로 14.8% 포인트 감소했다.

청년들의 이런 인식은 가구 소득과 거주 형태가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조사됐다. 계층이 한 단계 상승할 가능성에 대한 청년 인식은 월 가구소득 100만원 미만인 가구보다 500만~700만원인 가구가 3.1배 높았다. 또 임대주택 거주자보다 자가주택 거주자가 1.3배가량 높았다. 이런 경향은 해가 갈수록 뚜렷하다. 월 소득이 700만원 이상인 가구에 속한 청년층은 100만원 미만 가구의 청년층에 비해 주관적 계층의식이 한 단계 높아질 가능성이 2013년 5.2배에서 2017년 8.2배로 크게 증가했다.

청년들에게 계층 상승의 사다리가 끊어진 지 오래다. 노력만으로 성공할 수 있다고 믿는 청년들이 갈수록 줄고 있다. ‘흙수저는 흙수저, 노력해도 흙수저’란 인식이 팽배해 있다. ‘수저계급론’의 고착화는 다음 세대의 계층 이동에도 영향을 미쳐 사회발전의 동력을 떨어뜨린다. 청년들의 좌절감이 더 깊어지지 않게 우리 사회가 힘을 모아야 한다. 청년들이 현실에 좌절하고 미래에 희망을 갖지 못한다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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