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먹방’이 인기를 끌고 있는 요즘 우리가 사는 세상은 음식 천국이라 할 만하다. 다양한 식자재는 물론 세계 각국의 요리와 패스트푸드, 배달음식까지 마음만 먹으면 쉽게 즐길 수 있다. 그만큼 늘어난 식생활 정보로 인해 먹는 일이 좀 더 복잡해지긴 했지만, 건강식을 챙기고, 새로운 레시피를 검색하며, 유명 맛집을 찾아 여행을 떠나는 것 따위의 일은 어느덧 익숙한 삶 일부가 되었다.
매일 반복되는 삼시세끼 식사는 누구에게나 주어진 가장 문화적인 감각체험이다. 음식을 먹는 데에는 후각과 미각뿐 만 아니라 눈과 귀, 몸과 마음이 느끼는 다중 감각이 총동원되기 때문이다. 음식의 유래나 조리법, 의학적 정보, 먹는 방법을 알게 되면 식사가 더욱 흥미롭고, 분위기 있는 인테리어와 음악, 긍정적인 대화가 함께하면 음식의 맛은 배가된다. 또, 아름다운 그릇에 예술적으로 담아낸 요리를 마주하면 저절로 스마트폰을 꺼내 즐거운 경험을 공유하게 된다. 이 모든 활동이 행복한 한 끼를 완성하는데 기여한다.
한때 한식세계화 바람이 일면서 우리 음식의 품격을 높이기 위해 그릇과 상차림의 멋스러움을 살려야 한다는 주장이 있었다. 요리와 그릇 분야에 많은 인재들이 협업을 시도하고 서양식 플레이팅을 도입한 푸드스타일리스트라는 직업까지 생겼다. 맛을 기본으로 멋을 더해 우리 음식문화에 날
개를 달자는 취지에는 이견이 없다. 하지만 정작 실패의 가장 큰 원인은 내부에 있었던 것 같다. 아직도 국내의 많은 식당에서는 여전히 비용이 적게 들고 다루기 쉽다는 이유로 스테인리스나 멜라민 소재의 그릇을 사용하고 가정에서도 플라스틱 보관용기를 식탁에 올린다. 문화는 가득 찼을 때 주변으로 흘러넘친다고 한다. 국내에서 외면받는 도자기나 칠기 그릇이 해외에서 성공할 리는 만무한 것이다.
이웃나라 일본에서는 지금도 예비신부들이 요리와 다도, 꽃꽂이를 배운다. 도자기를 매개로 한 이 세 가지 전통은 적합한 그릇을 고르고 연출하는 안목을 길러 높은 수준의 생활문화를 이끌었다. 요리와 그릇의 조화로 일본요리를 예술의 반열에 올려놓은 도예가이자 요리사 기타오지 로산진(1883~1959)은 “그릇은 요리의 기모노다”라고 하지 않았던가. 우리가 일본의 전통을 따라갈 필요는 없지만 그릇과 음식을 대하는 그들의 태도는 본받을 필요가 있어 보인다.
식당에서 도자기 쓰기가 불편하다고 피하는 것은 고객중심의 행동이 아니다. 그럼에도 소비자들은 왜 그릇의 품질을 문제 삼지 않는가. 이제는 “뚝배기보다 장맛”이 아니라 “뚝배기가 좋아야 장맛도 좋은” 시대가 되었다. 따라서 행복한 식사를 위해 우리 사회는 좋은 그릇에 투자해야 한다고 본다. 필자가 이렇게 주장하는 이유는 침체된 도예계나 요식업계를 살리자는 차원이 아니다. 음식문화의 수준 향상이 우리 삶의 질과 행복지수를 높이는 가장 손쉬운 방법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장기훈 한국도자재단 경기도자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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