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한국당의 ‘릴레이 단식’

이연섭 논설위원 yslee@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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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이 지난 24일 모든 국회 일정을 보이콧하고 ‘좌파독재 저지 및 초권력형 비리규탄 릴레이 단식’이란 이름으로 농성에 돌입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정치적 중립성’ 논란이 제기된 조해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상임위원 임명을 강행하자 나선 대여 투쟁이다. 한국당은 “조 위원 임명 강행뿐 아니라 청와대 특별감찰반 비리, 신재민 전 사무관의 폭로, 손혜원 의원의 부동산 투기 의혹 등 갖가지 문제가 쌓여 있다”고 농성 이유를 밝혔다. 단식은 오전 9시부터 오후 2시 30분, 이어 오후 2시 30분부터 오후 8시까지 1일 2개 조로 편성했다. 1개 조당 ‘5시간 30분씩’ 단식 농성을 하는 것이다. 단식 조장격인 ‘단식 릴레이 책임의원’도 정했다.

그런데 한국당이 야심차게(?) 시작한 릴레이 단식이 조롱거리가 됐다. 5시간 30분짜리 단식이 단식이냐는 것이다. 더불어민주당과 다른 야당에서 “이런 게 단식이냐. 개그다” “세끼 챙겨먹는 단식도 있냐” “릴레이가 아니라 딜레이 단식이다” “웰빙 단식하나” “단식 농성의 새로운 버전을 선보였다” 등등의 비판이 쏟아졌다. ‘단식 생쇼’라는 얘기도 나왔다.

한국당 내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나왔다. 홍준표 전 대표는 “어처구니없는 투쟁으로 국민에게 제1야당의 역할이 각인 되겠느냐”고 했다. 이재오 상임고문도 페이스북에 “대여 투쟁은 국민에게 감동을 주고 자신을 바쳐야 한다”며 “5시간 30분은 누구나 밥 안 먹는데 무슨 릴레이 단식이냐”고 했다.

논란이 커지자 나경원 원내대표는 “단식 용어가 조롱거리가 된 것은 유감”이라며 불끄기에 나섰다. “원래는 한 분이 종일 단식하는 형식을 하려다 의원들이 지금 가장 바쁠 때라서 2개 조로 나눴다”고 했다. 이 말이 또 꼬투리를 잡혔다. 모든 의정활동을 내팽개친 의원들이 ‘개점휴업’ 상태인데 도대체 무슨 일로 바쁘냐는 것이다. 한국당은 결국 ‘릴레이 단식 농성’에서 ‘단식’이란 표현을 뺐다.

단식은 합법적 수단으로는 도저히 권력에 맞설 수 없던 시절, 정권에 대항하던 수단이었다. 목숨을 걸 만큼 비장했기 때문에 DJ(김대중)ㆍYS(김영삼)는 독재정권 하에서 민주화를 쟁취할 수 있었다. 절박함과 간절함의 마지막 수단인 ‘단식’을 한국당이 너무 가볍게 생각해서 일까, 국민 반응은 싸늘했다.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 무개념 이벤트에 비웃음만 샀다.

지금 국회에는 민생 현안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국민 눈높이나 상식에 맞지 않는 단식은 그만하고, 대신 밥값이나 제대로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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