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여년 전 일본의 한 학자가 고대의 유리를 조사하던 중 특이한 점을 밝혀낸다. 로만 유리가 4~6세기 신라에서 집중 출토된 것이다. 로마시대에 로마제국에서 제작된 로만 유리가 같은 시대의 고구려와 신라에서는 거의 출토되지 않는 데 반해, 신라 고분에서는 어디서든 발굴됐다. 뿐만 아니라, 순금 반지, 귀걸이, 목걸이, 팔찌 등 장신구는 그리스 로마 세계에서 유행했던 디자인과 세공기법이 매우 닮아 있다. 이는 고구려, 백제, 신라가 중국문화의 영향권에 속하는 국가들이었다는 통설을 뒤집을 만한 증거였다.
책 <신라가 꽃피운 로마문화>(미세움刊)는 고대에서 근대에 이르기까지 한반도의 모든 문화는 중국문화의 영향하에 있었다는 통념을 뒤집는다. 또 신라고분과 주변 제국의 자료를 통해 ‘동양 속의 로마문화 왕국’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입증한다.
책은 10장에 걸쳐 신라고분에서 출토된 유물과 그리스 로마시대의 유물을 비교하며 신라를 해부한다. 1장에서는 한국, 중국, 일본의 사료에 비친 신라는 어떤 나라였는지 밝힌다. 2장에서는 신라가 고구려나 백제와는 다르게 왜 중국과 국교를 맺지 않았는지 신라와 중국의 관계를 알아본다. 3장에서는 신라, 가야에서 출토된 왕관, 특히 아시아문화권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수목관에 주목한다. 고대 유럽의 왕관의 원류인 수목관과 유사한 왕관이 신라왕릉에서 출토됐다며 신라가 독자적인 디자인을 창출했음을 보여준다. 4~9장에서는 천마총과 황남동 98호분에서 발굴된 무기류, 장신구, 도기 등을 통해 유라시아대륙을 횡단하는 동서교통로로써 로마세계의 문물들이 신라에 전해졌을 스텝루트를 되짚는다. 끝으로 신라가 로마세계와 단절되었을 것으로 추정하는 5세기 말에서 6세기 초의 국제적 환경을 알아본다.
저자 요시미즈 츠네오는 책을 통해 고대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중국문화가 동아시아를 뒤덮었을 것이라는 상식의 벽을 허문다. 이를 위해 논리가 아니라 실증을 들며 독자가 스스로 확인해보길 주문한다. 값 1만7천원
허정민기자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