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마음속 서약, 안성의 독립운동가들

독립운동의 역사에서 안성은 중요한 지역이다. 독립운동의 한 줄기인 의병전쟁에서 안성은 남부지역 의병의 거점이 됐다. 안성을 기점으로 충청북부와 경기남부, 해안지방까지 항일전쟁의 불길이 퍼져 나갔다. 또한 안성은 3ㆍ1운동의 3대 항쟁지 중 하나이기도 하다. 황해도 수안군 수안면, 평안북도 의주군 옥상면과 함께 안성은 만세시위가 격렬했던 곳으로 원곡, 양성 지역은 일제통치기관을 완전히 파괴하여 ‘2일간의 해방’을 맞이했고, 안성 읍내와 죽산지역에서도 많은 주민들이 만세운동에 참여하여 격렬한 항일 운동을 벌였다.

항쟁이 격했던 만큼, 탄압 또한 강했다. 당시 안성의 인구가 7만 명 정도로 기록돼 있고, 운동에 참여한 인원이 6천 명에서 8천 명 정도로 기록되어 있음을 토대로 살펴보면 대략 안성 인구의 1/10이 참여한 대규모 운동이었다. 이에 위험을 느낀 일제는 시위대에 군대를 동원하여 발포했고, 이 과정에서 안성 주민 18명이 그 자리에서 피살당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300여 명의 독립운동가를 체포하여 그 중 171명이 징역 5개월에서 최고 12년까지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그 외에도 시위대에 참여하지 않은 일반 민중을 체포하여 고문하고 구타하여 공포분위기를 조성하고 시위대에 참가한 가족을 끌어내기 위해 인질로 삼기도 했다.

생각해보면 이런 공포스럽고, 주변인들에게 피해가 갈 수도 있는 상황에서 독립에 대한 열망과 서약을 지키기는 매우 고민되고 어려운 결단이었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도 스스로를 저버리지 않고, 나라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버릴 각오를 한 안성의 독립운동가야말로 역사가 증언하는 위대한 분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록이나 자료가 부족하여 아직 적절한 예우를 받지 못하는 분들이 있어 안타까울 뿐이다.

안성은 일제강점기 내내 독립의 열망이 꺼지지 않은 곳이다. 의병전쟁, 3ㆍ1운동 이후로도 신간회, 의열활동, 임시정부 참여, 한국광복군 활동 등 안성의 열기가 8ㆍ15 독립의 그 순간까지도 계속해서 이어져갔다. 그리고 그 역사를 널리 기리기 위해 안성 3ㆍ1 독립운동기념관이 설립되어 있다. 안성시는 독립의 역사를 알리고, 위대한 분들을 예우하며, 지금 시대의 사람들이 역사를 잊지 않게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올해는 3ㆍ1운동 및 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100이라는 숫자가 가지는 특별함 때문에 올해는 여느 때보다 더 독립에 대해 기억하는 해가 될 것이다. 안성의 독립운동가들이 어떤 마음으로 스스로에게 맹세하고, 그 서약을 지키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생각해 보기 좋은 한 해가 될 것이다. 3ㆍ1운동 및 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을 맞아, 선열들의 위대한 서약을 마음속에 품을 수 있도록 다짐해 본다.

박용주 경기동부보훈지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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