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시원한 생태탕

꽤 자주 가던 식당이다. 차림표는 필요 없다. 의례 나오는 음식이 있다. 냄비를 무ㆍ푸성귀가 덮었다. 그 속에 생선 토막이 보인다. 끓어 오르던 국물이 튄다. 먹어도 좋다는 신호다. 식도가 따끔거리며 국물이 넘어간다. 고춧가루 뒤집어쓴 생선살이 부드럽다. 자작해진 끝물엔 밥이 제격이다. 붉은 국물에 만 밥 한 공기가 식사 끝이다. 90년대, 수원 남문의 생태탕 집이다. 직장인들이 숙취를 달래던 곳이다. ‘늦게 가면 자리 없는 집’으로 통했다. ▶인터넷이면 안 될 게 없다. 생태탕 요리도 정리돼 있다. ‘주 재료로 생태(500g) 한 마리를 준비한다. 부재료는 콩나물 100g, 쑥갓 25g, 무 150g, 미나리 25g이다. 양념은 고추장 1큰술, 다진 마늘 1큰술, 소금 약간, 고춧가루 2큰술을 넣는다.’ 누구나 할 생태탕 요리다. 그런데 도대체 그 맛이 안 난다. 같은 단맛인데 너무 다르다. 속을 긁어대는 매운맛도 다르다. 젓가락이 꽂히는 무도 다르다. 50, 60대 기억 속 생태탕 레시피는 어디에도 없다. ▶2011년. 생태탕이 위기를 맞았다.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했다. 후쿠시마 원전이 폭발했다. 원전 방사능이 바다에 유입됐다. 일본 수산물이 곧 죽음의 음식이 됐다. 끔찍한 사진들이 인터넷을 도배했다. 일본산 생태를 쓴다는 괴소문이 돌았다. 생태탕 전문점들이 문을 닫았다. 황태찜, 아귀탕으로 메뉴를 바꾸기도 했다. 2013년 이런 조사결과가 있다. 노량진 수산시장의 생태 반입이 75% 줄었다. 한 대형 마트의 생태 판매량이 85%나 줄었다. ▶2019년. 생태탕이 또 위기다. 이번에는 법에 의한 강제다. 국내산 생태탕 판매가 불법이 됐다. 생태탕 맛의 생명은 신선도다. 냉동하지 않은 명태로 끓여야 제맛이다. 국내 연안에서 잡는 명태가 적격이다. 가격이 천정부지로 올랐다. 불법 어획이 판을 치게 됐다. 결국, 정부가 극약 처방을 내렸다. 소비자 식탁에 오르지 못하게 막았다. 12일부터 열흘간 단속반이 돌아다닌다. ‘그 옛날 생태탕’을 팔았다가는 그 즉시 범법자가 될 처지다. ▶1991년 명태 어획량이 1만톤이었다. 이게 2008년 0톤으로 떨어졌다. 그 후에도 0~5톤을 오간다. 명태를 살리려는 노력이 눈물겹다. 오죽했으면 생태탕까지 단속하겠나. 알면서도 씁쓸함은 있다. 사실상 사라진 국내산 생태탕이다. 굳이 손님 식탁까지 뒤질 필요가 있을까. 명태 불법 조업 단속만으로는 부족한 것일까. 이래저래 생태탕이 그리워지는 계절이다. 칼칼한 국물, 부드러운 고기, 고소한 곤이…해장한다며 또 마셔버린 소주 한잔….

김종구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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