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우리 삶의 일부 ‘커피’

김창학 경제부장 chkim@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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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진하지 않은 향기를 담고 / 진한 갈색 탁자에 다소곳이 / 말을 건네기도 어색하게 / 너는 너무도 조용히 지키고 있구나 / 너를 만지면 손끝이 따뜻해 / 온몸에 너의 열기가 퍼져 소리 없는 정이 내게로 흐른다. 7080세대면 ‘아~’하는 감탄사와 함께 노랫말을 흥얼거릴 추억의 그룹 ‘노고지리’의 ‘찻잔’이다. 단조롭고 잔잔한 록발라드풍의 멜로디는 지금도 명곡으로 꼽힌다.

1970년대 말에 나온 이 노래는 음반가게 스피커를 통해 거리에 울렸고 젊은이들이 즐겨 드나들던 음악 다방이나 심야 라디오 프로를 통해 국민가요로 자리를 잡았다. 당시 한국 가요계는 디스코 열풍으로 빠른 템포가 주류를 이뤘고 사회는 2차 오일파동, YH 사건, 부마항쟁 등으로 매우 혼란스럽고 뜨거웠다. 더욱이 10ㆍ26사태로 유신정권과 긴급조치가 종식돼 민주화의 봄을 기대했지만 군(軍) 사조직인 하나회 중심의 12ㆍ12쿠데타로 날벼락을 맞았다.

젊은이들에게는 그윽한 커피 향 대신 최루탄 가스로 범벅된 시대였다. 싸구려 커피를 마신다 / 미지근해 적잖이 속이 쓰려온다 / 눅눅한 비닐 장판에 발바닥이 / 쩍 달라붙었다 떨어진다 … 삐걱대는 문을 열고 밖에 나가본다. (싸구려 커피를 마신다의 노래가사중). 가수 장기하는 말하듯 한 특유 창법으로 20대의 일상을 커피로 담담하게 노래했다.

훤칠한 키에 서울대생의 엄친아 장기하는 2세대 인디 씬의 아이콘이었다. 88만 원 세대, 5포 세대의 젊은 애환을 대변하는 가사는 웃기면서도 슬프고 허탈했다. 하지만 성공과 경쟁을 요구하는 시대에 가진 것 없는 가난한 젊음에 활력소가 됐다. 기성 시대에 휘둘리지 않는 자아 성찰의 여유였다.

올해 겨울은 온화하다. 영하 20도에 육박하는 ‘북극 한파’가 맹위를 떨쳤던 지난겨울과는 확연히 다르다. 이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최근 커피 시장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인기다. 한겨울에 따뜻한 음료가 아닌, 얼음 가득한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젊은 층에서 인기를 끌면서 ‘얼죽아’(얼어 죽어도 아이스 아메리카노)라는 신조어까지 생겼다. 시대에 따라 커피 맛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삶이 고되고 힘들어도 그저 사랑하는 이와 함께 커피 한잔 마시면 족하다.

김창학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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