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업 추진 기업에 최소 2년간 규제를 면제해주는 ‘규제 샌드박스’ 제도의 첫 적용 대상으로 11일 현대자동차가 신청한 도심 수소차 충전소 사업 등 4건이 선정됐다. 규제 샌드박스는 자유롭게 노는 놀이터의 모래밭(샌드박스)처럼 기업들이 자유롭게 사업 활동을 하도록 기존 규제를 면제 및 유예하자는 뜻이다.
이번 샌드박스 승인으로 현대자동차는 서울 시내 도심 4곳에 수소전기차 충전소 설치가 가능해졌고, 마크로젠은 비의료기관에 제한돼 있던 유전자 검사항목이 확대돼 맞춤형 건강증진 서비스를 할 수 있게 됐다. 버스에 LCD·LED 패널을 부착해 광고판으로 활용하는 ‘디지털 버스광고’도 허용됐다. 말로만 규제혁신을 한다고 지적받아온 문재인 정부가 출범 후 처음으로 실효성 있는 조치를 실행에 옮긴 것이다. 문 대통령도 12일 국무회의에서 “규제 샌드박스가 우리 경제의 성장과 질적 전환을 위한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번 조치는 빠르게 발전하는 신기술과 신산업을 법과 제도가 따라가지 못하는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시도하는 포괄적 규제개혁이라는 데 큰 의미가 있다. 앞으로 규제 샌드박스가 본격적으로 가동되기 위해서는 이 제도를 어떻게 운용하느냐에 달렸다. 규제 샌드박스는 2014년 영국이 처음 핀테크 분야에 도입한 이래 일본 등 10여 개국이 운영하고 있다.
일본은 2017년 규제 샌드박스를 창설하고 핀테크는 물론 AI, 개인정보 서비스, 스마트시티 등으로 확대해 나가고 있다. 당초 이 제도는 안 되는 것만 명기하고 나머지는 모두 가능하게 하는 ‘네거티브 규제’를 도입하려 했으나, 실제로는 각 부처 공무원들로 구성된 심의회를 열어 하나하나 허가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이래서야 얼마나 혁신적·창의적 제품과 기술, 서비스가 나올 수 있을지 의문이다. 금융위원회가 최근 열흘 동안 금융 규제 샌드박스 사전 신청을 받아 보니 88개사에서 105개 서비스를 신청했다. 그동안 금융산업이 얼마나 많은 규제에 시달려왔는지를 보여준다.
성공한 글로벌 100대 스타트업 중 57곳이 한국이라면 아예 창업이 불가능했거나 조건부 영업만 가능했다는 분석이 있다. 항공법 때문에 상업용 드론이 뜨지 못하고, 도로교통법 때문에 자율 주행차의 도로 주행이 제한받고 있다. 전 세계인들이 이용하는 차량공유 서비스와 원격진료 행위도 우리에게는 무용지물이다.
규제 샌드박스는 만능이 아니라 특정 기업의 제품·서비스를 검증하는 동안 제한된 구역에서 규제를 없애주는 임시 조치에 불과하다. 법령 개정 등 근본적인 규제개혁이 이어져야 한다.
신청받고 심의하고 공무원들이 ‘감 놔라 배 놔라’ 했다가는 규제 샌드박스는 구호에 그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제발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적극적이고 융통성 있게, 그리고 과감하게 규제 샌드박스 제도를 운용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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