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고령 운전자

이연섭 논설위원 yslee@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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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 저녁 서울 청담동의 한 이면도로에서 96세의 유모씨가 호텔 주차장 벽을 들이받았다. 유씨는 충돌 후 차를 후진하다 그랜저 차량과 부딪혔고, 이어 길 가던 30세 여성을 쳤다. 유씨는 이 여성을 친 후에도 계속 후진해 도로 반대쪽 건물 벽에 부딪쳤다. 차 밑에 깔린 여성은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숨졌다.

고령 운전자들에 의한 교통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해 12월엔 부산에서 70대 운전자가 가속페달을 브레이크로 착각해 후진 도중 햄버거 가게로 돌진했고, 같은 해 11월엔 경남 진주에서 주차를 하던 70대 운전자가 역시 브레이크 대신 가속페달을 밟아 병원 입구로 돌진하는 사고를 냈다.

사망사고를 낸 유씨는 1종 보통 면허 소유자다. 지난해 7월 운전면허 적성검사를 통과했다. 현행 규정상 면허 갱신을 원하는 사람은 본인이 질병 보유 여부를 적고 시력 검사를 받은 후 문제가 없으면 면허가 갱신된다. 5분 정도면 가능하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인지능력과 신체 반응력이 저하돼 교통사고 위험이 높다는 게 전문가 견해다. 가속 페달과 브레이크를 헷갈리거나, 사고를 내고 당황해 가속 페달을 세게 밟아 차량이 급발진하듯 튀어나가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경찰청에 따르면 만 65세 이상 운전자가 일으킨 교통사고는 2014년 2만275건에서 2015년 2만3천63건, 2016년 2만4천429건, 2017년 2만6천713건으로 매년 증가하고 있다. 전체 교통사고에서 차지하는 비율도 2014년 9%에서 2017년 12.3%로 늘었다. 75세 이상 운전자가 낸 교통사고는 최근 4년 사이 75%가량 증가했다.

고령 운전 위험 논란에 정부는 올해부터 75세 이상 운전자의 면허 갱신과 적성검사 기간을 5년에서 3년으로 줄였다. 2시간짜리 교통안전 교육도 이수해야 한다. 적성검사 실효성은 고려하지 않고 검사 주기만 단축됐다. 75세 이상 노인은 건강 상태가 수시로 달라지기 때문에 정기 검사와 함께 수시 검사도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엘리자베스 2세 영국여왕의 남편 필립공(98)이 최근 교통사고를 낸지 이틀 만에 다시 운전대를 잡아 비난이 일자 운전면허를 포기했다. 고령층 운전은 세계적 이슈다. 우리도 고령 운전자 운전면허 반납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해 고령 운전자가 면허를 자진 반납한 경우는 1만1천916명으로 65세 이상 운전자의 0.4%에 그쳤다. 일본은 면허를 반납한 노인들을 대상으로 교통비 지원, 안경ㆍ보청기 구입 시 할인 등 혜택을 주고 있다. 우리도 고령 운전자 사고를 줄이기 위한 실효성 높은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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