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수원의 항일운동을 기리며

우리 민족이 일제의 잔악한 식민통치에 목숨을 바쳐가며 격렬하게 저항한 세계사에 유례가 없는 항일독립운동 기념일인 3ㆍ1절이 100주년을 맞이한다. 이날은 우리의 독립 의지가 담긴 독립선언서를 낭독하며 세계만방에 알린 날로 기념하고 우리나라 대한민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하신 순국선열들을 추모하고 애도한다.

내 고장 수원 출신의 항일 운동가분들도 일제 강점기 신분고하,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교육자로부터 기생에 이르기까지 독립을 위해 항일운동을 전개했다.

국가보훈처에서는 지난해 8월의 독립운동가로 대종교 2대 교주인 김교헌 선생을 선정했다. 김교헌 선생은 경기도 수원군 구포리 태생으로 1898년부터 독립협회에서 활동했고, 독립협회 지도자들이 개혁내각 수립과 의회개설을 추진하다 체포되자, 협회 대표의원으로 민중계몽을 선도했던 인물이다.

조선총독부가 ‘항일독립운동단체’로 대종교를 지정하고 탄압을 시작하자 대종교 본사를 만주로 옮기고 항일운동 역량을 강화해가며 민족교육 운동에 힘을 보탰다. 그리고 김교헌 선생은 1919년 초 독립운동가들과 뜻을 함께하며 ‘대한독립선언서’를 작성했고 북로군정서에 참여했으며 홍범도, 김좌진 장군이 청산리대첩에 기여,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

1904년 수원지방 초대 전도사인 목사 이하영은 3월1일 ‘진남포 만세시위’를 도모했으며 만세시위 후 주동자로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삼일학교 설립자인 임면수 선생은 국채보상운동을 주도했으며 이후 중국 삼원보 독립운동 기지의 경기도 대표로 활동하고 신흥무관학교 설립에 참여하는 등 항일투쟁을 전개하다 투옥됐다.

지금 매향여중과 매향여자정보고등학교의 전신인 삼일여학교 교사로 재직하셨던 김세환 선생은 3ㆍ1 독립만세운동을 사전에 조직하고 준비한 47인 중 한 분이다. 수원 율전동 출신인 염석주 선생은 신간회의 지역 책임자로 만주에 농장을 설립, 수원과 안산의 농민을 이주시키고 영농을 하며 독립군에 군량미를 제공했다.

이같은 수원 출신 독립운동가의 항일운동은 한국 독립운동의 원동력으로 작용했고 중국, 인도, 필리핀 등 제국주의 열강의 침탈로 신음하던 피·압박 민족의 독립운동으로 이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지금 우리가 내 조국 내 땅에 대한민국 국민으로 살고 있는 것이 조상들의 헌신적 독립정신, 숭고한 희생정신이 있었음을 다시 한번 가슴속에 되새겨본다.

김봉균 경기도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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