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ㆍ1운동 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인물은, 유관순(1902∼1920)이다. 그녀는 일제의 불법 침략에 항거하며 3ㆍ1운동에 참여하고 고향인 아우내장터의 만세운동을 주도했다. 감옥에 갇혀서도 대한독립만세를 불렀던 그녀는 18살의 꽃다운 나이에 서대문형무소에서 숨졌다. 일제는 만세운동을 주도한 그녀를 모질게 고문했지만 온갖 핍박에도 끝까지 굴하지 않았다. 이미 죽음을 각오했기 때문에 두려울 것이 없었다. 17살 학생 신분으로 3ㆍ1운동에 참여했던 유관순처럼 독립운동에는 수많은 학생들이 참여했다. 그들의 고귀한 희생, 숭고한 정신이 있었기에 오늘의 대한민국이 존재할 수 있었다.
학생들이 독립운동에 적극 나서면서 학교는 독립운동의 거점이 됐다. 지역주민들도 적극 동참했다. 경기도교육청이 3ㆍ1운동 100주년을 맞아 독립운동 거점으로 활용됐던 경기도내 학교 10곳을 발굴했다.
1919년 3월11일 안성의 양성공립보통학교(현 양성초)에선 학생들이 운동장에 모여 독립만세 시위를 했다. 남진우 선생이 일본인 교장의 만류를 뿌리치고 한국인 교사, 학생들과 함께 만세 삼창을 했다. 안성초등학교도 3월30일 안성군 주민 1천여 명이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했던 곳이다. 당시 군청이었던 곳에 안성초교가 세워졌다. 파주 교하공립보통학교(현 교하초)에선 3월10일 구세군 교인 임명애가 주도하는 독립만세운동에 100여 명의 학생이 참여했다.
가평공립보통학교(현 가평초)는 3월15일 가평군 북면과 군내면 주민 수백 명이 태극기를 휘두르며 만세운동을 벌였던 장소다. 3월28일 시흥군 서면 주민 200여 명이 만세 시위를 벌였던 노온사리경찰관 주재소에는 현재 온신초교가 세워져 있다. 3월27일부터 29일까지 한백봉, 한순희 선생이 주도해 낙생면민 등 1천여 명과 독립만세를 외친 곳은 현재 낙생고가 자리하고 있다.
수원고등농림학교(현 차세대융합기술연구원 부지) 학생들은 1923년 학교를 상대로 조선인 차별금지 등 7가지 요구 사항을 걸고 비밀결사 활동을 벌였다. 또 3월3일 학생 36명이 기숙사를 빠져나와 서울서 펼쳐진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했다. 장현공립보통학교(현 장현초), 오산공립보통학교(현 성호초), 광주공립보통학교(현 광주초) 등에서도 독립운동이 펼쳐졌다.
3ㆍ1운동 100주년을 맞아 독립운동 거점지였던 학교들에서 만세운동을 재연하고 있다. 지난 22일 성남 낙생고에 이어 3월5일엔 화성 고정초에서, 11일엔 파주 교하초에서 기념행사가 열린다. 독립운동의 역사가 바로 여기, 우리 동네ㆍ우리 학교에 있다는 것을 되새길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이곳이 역사의 산 교육장이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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