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출생의 의미

얼마 전 아이를 출산했다. 이제 막 출생한 아이는 말 그대로 이 세상에 나와(出) 삶(生)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한자에서 출(出)자는 초목이 위로 자라난 모습을 뜻하며, 생(生)자는 새싹이 흙 위로 돋아난 모습을 그린 것으로, 이 두 단어는 사실 매우 유사한 자의(字義)를 가지고 있다. 어제 남편은 아이의 출생일이 기록된 출생증명서를 가지고 관공서에 가서 출생신고를 마쳤다. 하지만 아이의 삶(生)은 이 세상에 드러나기(出) 이전인 열 달 전부터 엄마의 뱃속에서 이미 시작되었다. 마치 겨우내 흙 속에서 움틀 준비를 하고 있던 작은 씨앗처럼 말이다. 그래서 동양에서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한 살이 된다. 아직 붉은 얼굴을 하고 목도 가누지 못하는, 봄날에 막 돋아난 새싹과 같이 보드랍고 여린 아이를 보고 있노라면 생명에 대한 신비와 경외가 밀려온다. (물론 이러한 황홀경 역시 ‘조리원 천국’을 떠나 ‘실전 육아’에 돌입하게 되면 사라질지도 모를 일이지만.)

위에서 말했듯이 동양 문화권에서 출생이라는 말은 기본적으로 삶의 시작이라는 의미를 가지면서도, 삶을 영위해나가는 모든 생명들에 대한 존재론적 함의가 담겨져 있다. 첫째, 모든 생명의 드러남(出)은 “변화(易)”라는 작용을 전제로 한다. 예를 들어 씨앗이 싹으로 ‘드러났다’는 것은 씨앗이 싹으로 변화했다는 것을 뜻한다. 그래서 『주역』의 해석서인 「역전」에서는 “생생(生生)함을 일러 변화함(易)이라고 한다.”라고 하였다. 모든 생명은 흐르는 시간 속에서 끊임없이(生生不已) 변화한다. 주역의 관점에서 볼 때 모든 삶(生)은 생생(生生), 즉 생기발랄하다. 살아있는 꽃이 생생한 이유는 끊임없이 피고 지는 변화의 과정 속에 있기 때문이다. 둘째, 모든 생명은 끊임없이 변화(易)하는 동시에 날로 “새롭다(新)”. 당연한 말이지만, 무엇이 변화했다는 말에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드러나지 않았던 그 무엇이 새롭게 드러났다는 의미가 전제돼 있다. 그래서 공영달(孔穎達, 574~648)은 변화를 뜻하는 “역(易)” 개념을 설명하면서 “새록새록(新新) 멈추지 않고, 생생(生生)하게 이어진다.”라고 하였는데, 참으로 간결하면서도 명쾌한 해석이 아닐 수 없다.

신생아실 면회시간이 되면 아이의 부모와 친지들이 아이를 보기 위해 신생아실 유리벽에 우르르 몰려와 사진을 찍어대는 장관이 펼쳐진다. 어제와는 또 달라진 아이의 모습을 놓치고 싶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나날이 살도 오르고 표정도 다양해져가는 아이들을 보며 신기해하는 젊은 신입 엄마아빠들. 불혹의 나이를 넘긴 우리 노부부도 그 대열에 합류하여 어제보다 자란 아이의 모습에 흐뭇한 미소를 지어본다.

임명희 공주교대 윤리교육과 교수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