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만천과해의 현대적 재해석

드넓은 땅을 자랑하는 중국의 역사는 곧 전쟁의 역사라고도 한다. 재물과 권력의 공통점은 당장 쥐고 있는 자가 으뜸인지라 재물과 권력의 정점인 천하를 두고 겨루어보는 일은 당대의 야심가에게는 목숨이 아깝다고 사양할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이로 인해 병법(兵法)을 다루는 병서야말로 중요한 가치가 있었고 그 중 유명한 병서의 하나인 삼십육계(三十六計)에서는 ‘만천과해(瞞天過海)’를 첫 번째 계책으로 제시하고 있다. 전쟁터에서는 적을 앞두고 이기는 것이 급선무인지라 기만술이야말로 가장 먼저 살피고 통달해야 할 것임은 당연하다고 할 것이다.

이제 오랜 세월이 흘러 현대를 살아가는 지금 이 순간에도 세상은 이래저래 새로운 전쟁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전처럼 총칼을 차고 주먹싸움을 하는 곳이 있는가 하면 이념과 사상으로 선을 긋고 말싸움을 하는 곳도 있고 정치적인 문제를 놓고 눈싸움을 하는 곳도 있으며 경제적인 문제를 앞세워 기 싸움을 하는 곳도 있다. 그래서 그런지 나라와 나라 간의 관계는 말할 것도 없고 우리 사회의 여기저기에서도 ‘만천과해’는 여전히 유효하고 제일가는 처세법인 듯하다.

그런데 ‘만천과해’라는 것이 달리 들여다보면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고 무모한 일을 도모한다’라고 할 수 있을 터인데 모든 일은 하늘이 도와야 이루어지지 아니하던가. 더욱이 민주주의가 한층 진보하고 시민의식이 굳건해지는 지금 우리 사회뿐만 아니라 전방위적으로 기술이 고도로 발달하고 치열한 정보의 각축전이 벌어지는 현대의 국제 사회에서는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것은 곧 국민을 속이는 일이고 인류의 평화와 공존에 도전하는 일이 되기 쉽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는 ‘만천과해’하겠다며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사람들의 뉴스로 연일 눈과 귀가 따갑다. 그리고 얼마 전에는 하노이 참사라는 이름으로 예기치 않은 비보가 전해지기도 하였다. 이렇듯 자칫 잘못된 선택으로 개인을 넘어 단체의 대표자나 국가의 지도자에게 망신살이 뻗치면 스스로의 위신과 입지도 문제지만 그 여파로 머지않아 많은 사람들이 고통의 늪에 빠지기 쉬운 일이다.

삼십육계 주위상책(走爲上策)이라고 했던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것보다 애당초 그런 상황을 피하기 위해 차라리 줄행랑을 놓아 훗날을 도모하는 것이 오히려 일견 대인된 자들의 현대적 처세일 것이다.

황태영 용인정신병원 의사 진료부장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